[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기분 좋은 보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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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면 어쨌든 불안하다. 지난달에 갑상샘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S병원에서 우두커니 앉아 차례를 기다리다가 이 병원에서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50대 중반인 그분은 수술 후에도 치료차 병원을 들락거리던 중에 병원 로비에서 S생명 판촉사원들을 보고 무료한 기다림을 줄일 겸 상담을 요청했다. 보험에 든 적이 있는데 갑상샘암 수술비도 지원해 주느냐, 혹시 다른 보험회사에도 가입한 게 있는지 알 수 있느냐 등등을 물었다.

그 직원은 조회를 해보더니 자기 회사에 보험을 든 게 있다면서 보험료 수령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회사 두 군데에도 보험에 가입되어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 결과 생각지도 않은 거금이 생겼다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남편에게 큰소리쳐서 기분이 더 좋아요. 한 30년 같이 사업하면서 항상 나보고 오지랖 넓다고 핀잔을 주었거든요.”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사정할 때마다 딱해서 들어 놓은 것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특히 세 군데 보험회사 가운데 가장 액수가 많은 곳이 J사였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보험설계사가 나이도 많고 말도 서툴고 인물도 별로여서 ‘저래 가지고 어떻게 실적을 올릴까’ 걱정되어 일부러 큰 액수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보험설계사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이 결국 내게로 돌아오더라고요.”

점차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서 남을 생각한다는 일이 쉽지 않다.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말자는 소극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자주 흔들린다. 한발 양보해 주면 감사는커녕 거침없이 밀치고 저만큼 달려 나가는 얄미운 사람을 볼 때는 때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남을 위해 한 일이 없는데 유난히 운이 좋은 건 엄마가 쌓은 덕이 내게 돌아와서 그런가 봐요.”

일이 술술 잘 풀려서 “역시 넌 행운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 딸이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다 엄마 덕”이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마치 보험료를 몇 푼 내지 않고 거금을 탄 기분이랄까. 게다가 보험을 들어 놓은 것도 없는데 다행히 나의 갑상샘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윤세영 수필가
#보험#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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