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254>개와 고양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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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
―에쿠니 가오리(1964∼)

늦은 밤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토악질을 했지요
깔끔하게 샤워를 했는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더니
자고 있던 남편이
토한 냄새가 나
라고 하더군요
개처럼 냄새도 잘 맡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남편은 아무 대꾸가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밤나들이를 하는 아내로군 이라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잠이 들었어요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시집 ‘제비꽃 설탕절임’에서 옮겼다. 제목처럼 달콤하고 진한 보랏빛 감성을 자유분방한 성격의 화자가 발랄하게 펼치는 시집인데, 어떤 시는 유부녀가 이리 내밀한 사연을 드러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거침없다. 그런데 농밀한 시에서도 담백한 맛이 난다. 시인의 천진하고 내숭 없는 천성이 쉽고 결 고운 시어에 실려 있기 때문이리라.

화자의 시어른들이 이 시를 봤다면 ‘집안 꼴 하고는!’ 하고 혀를 찰 테다. 하지만 갯과(科) 남편과 고양잇과 아내인 이 부부는 잘 지내고 있다. 아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사람인 걸 남편은 잘 안다. 그렇게 생긴 걸 어쩌겠는가. 처녀 때라고 달랐을라고. 저런 모습에 반해서 결혼한 것 아닌가. 결혼을 했으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건, 결혼 전에 그런 약속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억지다.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다가 “이런 발정 난 암고양이 같으니라고!” 으르렁거리며 바가지를 긁어봤자 분란만 일으킬 뿐이리. 그렇다고 남편이 아내를 포기한 게 아니다. 받아들이는 거다. 이 남편이 어떤 사람이냐? ‘왠지 분위기가 톰이라서/톰 하고 남편을 불러보았지/톰은 나를 힐끔 쳐다보면서/톰이 뭐야/란 표정을 지었어/하지만 왠지 톰이란 느낌이 들어서/나는 또/톰이라 부르고는/남편에게 딱 달라붙었지/나의/톰.’(시 ‘톰’) 이런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엉뚱하고 나긋나긋한 아내를 톰이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성격과 취향과 가치관이 같다고 꼭 잘 만난 부부가 아닐 테다. 착하고 우직하고 듬직한 개와 감정에 솔직하고 예민하고 매이는 거 싫어하는 고양이도 좋은 한 쌍이다.

황인숙 시인
#에쿠니가오리#개와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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