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63>그 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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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
―양애경(1956∼)

그대 살았던 집 근처를 지나면
눈은 저절로 그 쪽으로 쏠려
귀도 쫑긋 그 쪽으로 쏠려
이 각도에선 그 집 지붕도 보이지 않지만
그 창도 물론 보이지 않지만
온몸이 그 쪽으로 쏠려 세포 하나하나가 속삭여
온몸의 솜털이 일어서 나부껴

이제 그대 거기 살지도 않는데
그런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길들여지지 않는 눈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립다고 날마다 말할 수 있었으면 안 그랬을까?
아침마다 밤마다 살 부비며 살았으면 안 그랬을까?
그리워라… 이제는… 다른
사람이 사는… 그 창


그 집 앞이 아니라 그 집 근처다. 현재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아니고, 그 사람이 살았던 집 근처를 우연히 지나쳐 가는데 가슴이 떨린다. ‘온몸이 그 쪽으로 쏠려 세포 하나하나가 속삭여/온몸의 솜털이 일어서 나부껴’! 너무나 그리워서, 그래서 이 동네를 피해 다녔는데 여러 해가 지나 방심했다. 아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늘 오고 싶었을 테다. 그 집, 그 창이라도 보고 싶었을 테다. ‘보고 싶은 것을/보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눈의 욕망! 왜 이리 보고 싶지? 그립다고 날마다 말하고 싶었는데, 살 부비고 같이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못 다한 사랑은 못 만난 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열정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그 불씨는 품은 이의 가슴에 화상을 입힌다. 하지만 그 화상으로 그는 오래오래, 나이 든 뒤에까지 감정이 살아 있고, 내면의 그 생기는 외부로 이어진다. 필경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세계가 넓어지리라.

이 진솔한 시의 감수성과 정서는 호소력이 있다. 비슷한 경험을 떠올릴 독자들이 많을 테다. 장소는 그 집 앞일 수도 있고, 그 버스정류장일 수도 있고 그 술집 앞일 수도 있을 테다. 우연히 마주치길 바라며 그 사람이 잘 가는 술집을 얼쩡거린 이도 있으리. 술집 문을 열고, 왁자지껄한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온몸의 솜털이 나부꼈으리’!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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