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짝퉁 나이키’ 세대가 본 금수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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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흙수저 과장됐지만, 젊은이의 예민한 인식 담겨
‘응답하라 1988년’과 달라진 오늘… 교육과 취업에도 계층간 칸막이
“공부 잘하면 정승도 될 수 있다” 이런 꿈이 사라지면서 패망한 조선처럼 될 것인가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대학생들이 뽑은 올해의 신조어에 ‘금수저’가 꼽혔다. 소셜미디어의 유행어가 흔히 그렇듯이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은 과장됐지만 그럼에도 우리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최첨단에서 겪는 젊은이들의 예민한 인식을 담고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응답하라 1988년’의 시대는 지금과 달랐다. 그때도 빈부 격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이 느끼는 격차라는 게 기껏해야 나이키(Nike)를 신느냐 짝퉁 나이스(Nice)를 신느냐 정도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전까지만 해도 취업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뉘 집 자식은 좀 나은 회사에 취직하고 뉘 집 자식은 좀 못한 회사에 취직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사촌이나 이웃이 잘돼서 배 아픈 건 있었지만 좌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꼭 재벌의 자녀여서 금수저가 아니다. 작은 문구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한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자식이 있는데 공부를 안 해 고민이라면서 시원찮은 대학에 가면 졸업이나 시킨 뒤 자기 회사에 나와 돕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상위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세상에 수십 군데 취업원서를 내보다가 안 될 경우 비빌 언덕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나이키와 나이스의 차이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은 광복 이후 세계적으로 봐도 유난히 평등한 사회로 출발했다. 조선시대 지배계급 양반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70년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계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형성됐다. 개발독재 시대에 제 능력 이상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의 재벌만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이웃과 사촌 중에서도 부동산 혹은 주식 투자로 한몫 잡은 이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에서 벌어졌던 자산의 차이가 1995년 세계화 선언 무렵부터 증폭되기 시작했고 이후 칸막이는 점점 뛰어넘기 어려워졌다.

지금은 교육 기회가 평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영어 능력에는 외국 생활 경험이 결정적이고 기타 사교육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로스쿨을 둘러싼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교육의 기회뿐 아니라 취업의 기회마저 불평등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반영한다. 윤후덕 신기남 의원의 사례를 로스쿨만의 문제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취업문이 좁아지자 부모가 자녀의 취업에까지 개입하는 더 일반적인 현상의 특수한 사례로 봐야 한다.

18세기 조선 영조 때 유수원이란 실학자가 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본래 천민이 아닌 한 누구나 벼슬아치가 될 수 있는 사회로 15세기 건국 초에는 시골구석에서도 명신(名臣)과 재상(宰相)이 많이 나왔으나 16세기 후반 벼슬아치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해 17세기에 이르러 양반 중인 평민의 계층구조가 확립됐다. 한영우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2013년 ‘과거, 출세의 사다리’란 책에서 과거 합격자들의 명단인 방목(榜目)을 분석해 유수원의 지적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

유수원은 조선 사회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전환점을 사림이 뿌리내린 명종∼선조 때로 봤다. 조선 건국으로부터 160년 정도가 흘렀을 때다. 그때는 퇴계와 율곡이 활약한 유교 문화의 전성기였다. 사림이 표방한 도덕정치의 이상(理想)은 높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 속에서 불평등이 자라고 있었다.

조선 시대 향교는 농사철에는 방학을 하고 추수 뒤에 개학을 했다. 향교에 입학하면 관비(官費)로 배우므로 학비가 필요 없었다. 조선 초기 젊은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 전 교수는 주장한다. 서원의 설립은 사림이 중심이 돼 유교 교육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 개혁이었으나 거기서 공부하려면 쌀 수십 가마니를 갖다 줘야 했다. 한미한 집안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꿈이 사라지면서 조선은 패망으로 이끌려 갔다는 분석이 있다.

독일 학자 빌헬름 훔볼트는 “역사적 진실이란 마치 구름과 같아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때만 그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우리도 지금 광복 70년 만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전환기로 들어서고 있지는 않은지 좀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금수저#흙수저#응답하라#나이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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