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우선]‘교육복지부’를 만들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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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요즘 교육부는 속이 부글부글한다. 보건복지부 때문이다. 자칫 ‘부처 이기주의’니 뭐니 욕을 먹을까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생각할수록 복지부가 서운하다. ‘보육’은 분명 복지부 일인데 자꾸 은근슬쩍 골치 아픈 일을 교육부로 떠넘긴다.

초등학교의 안 쓰는 교실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교육부 권한이다. 그런데 복지부가 빈 교실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제대로 상의도 없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더 짜증나는 건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이를 지지하는 청와대 청원을 넣더니 국무총리까지 나서 “빨리 조율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공간 활용 권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들은 돌봄 기능이 자꾸 학교로 넘어오는 게 싫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우리가 교육을 하려고 교사가 됐지 애들 콧물 닦아주고 밥 먹여주려고 교대에 간 건 아니지 않냐”며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인데 사회가 보육까지 요구해 교육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방과 후 수업이나 돌봄교실이란 게 전혀 없는, 오직 정규수업만 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의 학교를 경험한 20년 차 이상 교사들 입장에선 지금 상황이 더욱 개탄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세상이 변했다. 일하는 여성은 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늘었다. 사회적 돌봄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국민은 가장 믿을 만하고 교육적인 공간인 학교가 돌봄 기능을 맡아주길 소망한다. 인구 급감 속에 가용 노동력을 극대화하려면 앞으로 일하는 여성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점의 문제일 뿐 보육과 교육 사이의 벽 허물기는 언젠가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숙제다.

보육과 교육을 칼같이 구분한 현재 시스템은 대다수 국민에게 불편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왜 다섯 살만 되면 한동안 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기려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한 달 5만 원이던 어린이집 비용이 유치원만 가면 왜 50만 원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오후 5시까지이고, 그 이후 돌봄이 필요한 소외계층 아이들은 다시 복지부 소관인 지역아동센터로 옮겨 밥을 먹고 숙제를 하다 집에 가는 실정이다. 삶은 흐르는 물처럼 연결돼 있는데, 국가 서비스는 복지부와 교육부 소관으로 양분돼 있다.

교육부가 들으면 질색하겠지만 ‘복지의 교육 침범’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역대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머지않아 학교에 영·유아뿐 아니라 노인 돌봄까지 접목하려는 시도가 생길 것이다. 일본처럼 일명 ‘노인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노인 주간 돌봄 프로그램이 학교 공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농촌 지역에 가보면 한때 900명이 생활하던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고작 30∼40명에 불과한 곳이 부지기수다. 최소 규모를 충족하지 못해 급식을 중단한 학교도 많다. 규정상 전교생이 25명 미만이거나 교직원 수가 학생 수보다 많으면 급식을 할 수 없다. 이런 곳에 ‘노인 유치원’을 접목하면 국가 자원으로서 학교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노인과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복지와 교육의 융합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정부는 복지부나 교육부가 아닌 ‘복지교육’ 혹은 ‘교육복지’의 관점에서 양쪽의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학교나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거나 희생하지 않도록 충분히 논의하고 인력과 재원을 합리적으로 재분배해야 할 것이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교육부#보건복지부#보육#국공립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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