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칼럼]우리에게 페스탈로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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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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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맞아 치적을 평가하는 여론조사에서 교육 분야가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 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직면한 교육 문제는 여러 요인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쉽게 해결을 볼 수 없겠지만 결의에 찬 대통령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믿고 싶다.

교육 문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됐지만 과거 어느 정권도 만족할 만큼 손을 쓰지 못했다. 이 같은 고질적인 교육 문제는 이 대통령에게는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보다 더 시급한 도전과 책임을 요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교육 개혁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교육열을 좋은 예로 언급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공교육은 겉으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민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신성한 교육 업무를 관장하므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깨끗하다고 믿지만 기대와 달리 부패의 온상(溫床)이라는 풍문이 널리 퍼졌다. 이번 공정택 전 교육감의 구속으로 서울시교육청이 비리로 얼룩져 있음이 밝혀졌다. 교육 행정의 총수가 이렇게 부패했으니 그의 지시를 받던 일선 학교가 건강한 교육을 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부분적이라고 하지만 이 나라 공교육의 장(場)이 이렇게 부패한 물신주의로 얼룩지고 이념적 갈등으로 찢겨 있다면 그대로 놓아 둘 수 없다.

교육문제 1차 책임도 답도 교사

지금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무서워할 정도로 위엄을 잃어버리게 됐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적지 않은 학생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책상에서 잠에 빠지는 일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더욱이 학생이 학교 교사보다 학원 선생을 더 믿고 무서워한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학교 교육이 권위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한 틈새로 사교육 시장의 영향력이 밀물처럼 밀려와 통제 불능 상태에 가깝게 됐다. 학교에서 정규 교육이 이뤄지는데도 사교육의 황금 시장은 날이 갈수록 확대된다. 학교 교육이 얼마나 부실하기에 사교육 기업이 주식 시장에 상장을 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단 말인가. 자녀를 가진 대부분의 중산층은 사교육을 위해 너무나 많은 돈을 지불해 가정이 무너질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한국인의 남다른 교육열이 합쳐져 만들어 낸 현상이지만 사교육 문제로 이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은 일종의 허영심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후진적인 의식 문제에서 비롯됐다. 우리 주변에서는 거의 모두가 과외를 하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어느 미국 작가가 썼듯이 “각자가 자기 능력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만 충실히 잘해도 아무도 패배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우리가 눈먼 욕망 때문에 외면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교육 환경을 이렇게까지 황폐하게 만든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게 있다. 교육자는 성직자같이는 될 수 없지만 그들의 역할에 비유할 만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비록 궁핍하기는 했지만 많은 수의 뜻있는 교사는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가르쳤다. 그들의 최대 목표와 보람은 어린아이에게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키워 사회에 나가 실현하도록 교육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존 듀이의 교육 철학을 실천에 옮긴 위대한 교육자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의 희생적인 삶은 물론이고 미국의 여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가 어린이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 우주선 챌린저호를 타고 하늘로 오르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것과 같은 헌신적인 교육자의 정신을 다만 얼마만이라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어떤 극약처방도 사명감만 못해


지금 어린 학생과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교육자로서 이렇게 투철한 의식을 갖고 있을까. 혹시 그들 대부분은 산업사회가 시작되자 희생적인 교육자로서의 삶보다 정년이 보장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서 교사직을 택하지는 않았을까.

대통령이 미국의 미셸 리와 같이 탁월하고 헌신적인 교육감이 없어 교장을 공모제로 하고 현직 검사를 교과부에 파견하는 것은 안팎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극약처방인 줄 안다. 문제는 교육환경이 지금과 같이 계속되고 공모제를 통해 선발된 교장은 물론 일선 교사가 교육자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도덕적인 재무장 없이 임한다면 이 대통령의 교육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들의 용기 있는 변신과 국민의 의식 개혁 없이는 학교 교실을 사교육 시장의 범람으로부터 지키고 교육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기는 불가능하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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