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원칙의 눈물, 변칙의 성공

  • 입력 2008년 1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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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1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 경제정책의 최고 책임자들이 펀더멘털(fundamental), 즉 기본이 튼튼하다고 강변한 시점이라 더욱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이후 한국 경제는 혼돈에 빠져들었고 수많은 직장인이 거리로 내몰렸으며 그 여진은 아직까지 계속된다.

외환위기는 공동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기본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기본의 중요성은 운동 경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피겨 스케이팅의 요정 김연아 양의 율동은 가히 입신의 경지다. 오늘이 있기까지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열정의 과정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제 지난 60년 동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산업화와 민주화의 여정에서 외면한 돌부리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가 됐다. 개발연대에는 법치보다는 인치에 의한 권력의 인격화를 통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 모든 것에 우선했다. 그 이면에는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현장을 온몸으로 절규한 1970년의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민주화 세력은 인권과 시장경제라는 기본 틀을 공고히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만이 정의라는 자기도취에 빠져 들었고, 결국 또 다른 권위주의적 후속 모델이 터 잡게 됐다. 이 틈에 원칙은 실종되고 변칙만 난무했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모범적인 경제 성장과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화려한 외관에 휘둘리지 말고 기본을 착실히 다져 나가야만 미래가 보장된다. 우리 모두 평상심으로 돌아가자. 권문세가뿐만 아니라 민초들도 남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원칙에 충실해 보자. 기본을 튼튼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스스로 존엄한 인격체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고지식하지만 원칙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이길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변칙 플레이를 하더라도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아예 떨쳐 버리자.

원칙을 지키는 데에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법치주의란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라 그 내용도 원칙을 담보하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뜻한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사실에만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진행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적법절차(due process)는 형식만이 아니라 실질까지도 요구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독이 들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외면한 채로 과실을 획득하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실체적 진실 발견도 중요하지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단호하게 배제되어야 한다는 형사법에서 확립된 독수과실(毒樹果實)의 이론이 사회 전체에 뿌리 내려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작동하면서 신구 세력 사이에 묘한 갈등도 나타난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원칙대로 처리하면 될 일을 공연한 허장성세로 사회 전체를 들뜨게 한다. 남의 잘못을 비판하기 이전에 무엇이 원칙인가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자. 차분하게 하나 둘 짚어 가면서 쌓였던 응어리들을 풀어 나가자.

서두르지 말자. 그간 빨리빨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소중한 문화로 자리 잡아 왔지만, 이제 결과만을 중시하는 전근대적 사회에 머무를 수는 없다. 빨리빨리라는 외침 속에 매몰된 절차적 정의를 되살려야 한다. 섬기는 자세, 낮은 자세도 중요하지만 이제 당당하게 정도를 걸을 때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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