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한국외교, 달라진 위기의 본질

  • 입력 2008년 7월 21일 20시 15분


한국을 둘러싼 위기(危機)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 가지 위기에 한 가지 논리와 주장만으로 맞설 수 없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문제를 보자. 규탄 받아 마땅할 짓이지만 일본을 너무 세게 몰아붙이는 것이 현명할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우리는 여전히 일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북(對北) 에너지 제공에서 빠지겠다고 한다. 북핵 문제는 이제 겨우 핵 프로그램 신고를 마친 상태인데 일본이 자꾸 엇나가면 우리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도 그렇다. 2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북의 책임을 묻자는 것이지만 회원국들이 과연 흔쾌히 응해 줄까. 누구보다 일본이 따라와 줄까. 멀쩡한 자국(自國) 국민이 몇 명인지도 모른 채 북에 납치돼 20, 30년 이상 생사를 모르는데 이 문제는 덮어놓고 한국의 관광객 피격사건에만 손을 들어 달라고? 아마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일본인 납치문제까지 ARF에서 공론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6자회담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북-일(北-日) 관계가 더 나빠질 텐데 회담이 잘되겠는가. 어쩌면 일본은 앞으로 드러내놓고 납치문제를 이유로 6자회담 진전에 딴죽을 걸 수도 있다.

금강산 사건 ARF에 가선 안 돼

이처럼 요즘의 위기는 다원적이고 복합적이다. 상대의 도발에 대해선 강력히 대응해야 하나 그렇다고 ‘끝장을 보자’고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전후(戰後) 40여 년간 타이트했던 동북아의 미소(美蘇) 양극체제가 1990년대 중반부터 미중(美中) 간의 ‘느슨한 양극체제’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 중 일 러시아 간의 초보적인 다극화 체제로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뭘 하든 주변 4강을 모두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한국으로선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외교환경이다. 약간의 자율(自律)이 주어진 대신 눈치를 봐야 할 상대가 늘어난 게 곧 우리가 새롭게 직면한 위기요 도전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은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맞서려면 중국과 협조해야 하지만,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문제 해결에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것과 같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권처럼 ‘균형자’를 자처해서는 곤란하다. 뜻은 좋았을지 몰라도 그럴 힘도 없으면서 4강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고 해 조롱거리만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한미동맹을 튼튼히 한 후, 그 토대 위에서 더 유연하게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모두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달라진 환경에 부합하는 길이다. 현실적으로 그게 상책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달라진 외교환경의 출구(出口)를 한미동맹 강화에서 찾은 것을 나무라기는 어렵다. 이른바 진보세력은 이 정부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독도 문제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은 “한미동맹에만 신경 쓰고, 남북관계도 경시한 탓”이라고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미국과 계속 각을 세우고, 북에도 계속 퍼주었다면 금강산도, 독도도 조용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과연 그럴까.

그들은 자신들이 긍정 평가하는 김대중(DJ), 노무현 정권에서도 독도 문제는 심각했고, 북의 도발은 오히려 더 심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한 비극적인 제2차 연평해전(2002년 6월)은 그렇게 북에 퍼주었던 DJ정권 때 일어났다.

한미동맹 회복 때문에 고립돼?

그들은 독도 문제도 이 정부의 실용외교 때문에 불거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용’ 대신 ‘적대적 대치’로 일관했더라면 문제가 안 생겼을까. 이 정부가 독도 문제가 이렇게 되기 전에 한미동맹이라도 서둘러 추슬러 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이 정부가 겪고 있는 외교적 어려움은 물론 초기 대처를 잘못한 탓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위기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데서 오고 있다. 앞으로 다시 진보가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한반도와 동북아의 패러다임 변전(變轉)이 이렇다면 이보다 더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정부의 외교적 어려움을 치명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그 원인을 한미 관계의 회복에서 찾고 있음은 실망스럽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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