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쇠고기에 묻힌 北核

  • 입력 2008년 7월 7일 20시 18분


북한 핵문제가 쇠고기에 묻힌 듯해 안타깝다.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40억분의 1이라고 한다. 로또에 당첨되어 상금을 타러 가다가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과 같다는 것이다. 그럼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평생 고통을 당할 확률은? 100%에 가깝다. 이대로 가면 북한은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핵 프로그램 신고를 마쳤다고는 하나 완전한 폐기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오히려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그렇다면 쇠고기 대신 ‘북핵 반대’ 촛불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게 되면 통일은 물론이고 평화공존도 어려워진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한을 사이에 두고 북의 핵과 미국의 핵우산 간에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에 의해서 유지될 것이다. 10년이 넘게 북에 햇볕을 쪼인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면 허망한 일이다. 자칭 진보세력은 ‘분단 고착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는데 핵을 가진 북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분단 고착화’는 꼴통 보수우파가 아닌, 민족공조와 평화통일을 입에 달고 산 좌파가 자초한 것 아닌가. 앞으로 그 책임 논쟁이 또한 볼만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안 오도록 해야겠지만 조짐이 좋지 않다. 북한의 핵 신고에 따라 후속조치를 논의할 6자회담이 곧 열린다고 해도 빠른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6자회담 열려도 진전 미지수

우선 핵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 않다. 검증을 하려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가 정해져야 하는데 쉬운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성의껏 협조해줄지도 의문이다. 북이 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시설 불능화는 80% 이상 진척 됐는데 경제보상은 40%밖에 이행되지 않았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2·13합의대로 중유 100만 t 상당의 경제, 에너지 지원을 서두르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검증이 늦어지면 3단계 조치인 북핵 폐기는 논의 일정조차 잡지 못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수준과 범위에 관한 논란도 재연될 가능성이 짙다. 우리에게 비핵화는 1992년 2월 남북 간에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른 비핵화로, 핵무기를 포함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핵과 미국의 핵우산 철거까지도 포함하는 비핵화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은 이번 담화에서도 “전(全) 조선반도 비핵화는 검증을 전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의 의무이행은 예외 없이 검증을 받게 돼 있다”고 말해 남북한 동시검증 관철 의사를 분명히 했다.

향후 6자회담에서 북한은 언제든지 이런 요구를 들고 나올 수 있다.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는 일단 냉각탑 폭파 쇼로 적당히 넘어갔지만 핵 폐기는 차원이 다르다. 북의 핵개발 4대 목적이 군사력 증강, 국제사회의 보상, 국제사회 진입, 그리고 김정일의 업적인 선군(先軍)정치의 과시인데 이를 쉽게 포기하겠는가.

필자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지금 진행 중인 북핵 프로세스는 힐(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의 개인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힐이 애써 끌고 가고는 있지만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고 따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위기관리 메커니즘 강화해야

이도저도 안 되면 미국이 북한의 기존 핵무기는 불문에 부치고 핵 기술과 핵물질의 확산만을 막는 선에서 북과 타협할 수도 있다. 이런 판에 우리가 ‘주도적 역할’ 운운하며 섣불리 나섰다간 북핵은 북핵대로 용인하고 에너지는 물론 경수로 재(再)건설 비용까지 떠맡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럴 바엔 미국이 우크라이나 방식을 원용해 돈 주고 북의 핵무기를 사들이고, 나머지 참가국은 경수로 비용을 부담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 국력을 모으고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같은 기구를 다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야당도 이제는 대승적 차원에서 위기의 경중(輕重)을 가려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쇠고기에 매여 있을 것인가.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이 북한에 핵무기를 안겨줬는데 그런 우를 또 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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