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진짜 실용’을 못했기에 민심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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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4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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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왜 민심을 많이 잃었을까. 나보고 한 가지만 꼽으라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하게 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실망층이 늘었다는 점을 꼽겠다.

口號말고 ‘나에게 해준 게 뭔가’

국민 개개인이나 각 가정은 무엇으로 경제적 성장을 실감하게 될까. 가족 친척 중에 새로 일자리 구한 사람이 있거나, 재산이 늘었거나, 빚 고통이 줄었다면 경제적 불안감보다 ‘희망과 만족감’이 클 것이다. 특히 젊은층한테는 ‘세상이 나를 버리지 않고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체감(體感)이 중요하다.

전세금이 뛰어 18평에서 13평으로, 더 변두리로 쫓겨나야 하는 신혼부부에게 ‘세계 13위 경제대국,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자랑은 화만 돋울 뿐이다. 장차관 국회의원 판검사 재산이 거의 다 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경제성장이 좋기는 좋구나’ 하고 반길 서민은 없을 것이다.

그럴듯한 말만으로는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할 수 없다. 오히려 ‘말빚’만 늘어나기 쉽다. 친서민, 공정사회 같은 것이 현실에서 실감되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할수록 더 미워지는 것이다. 이 정권은 일부의 기대와는 달리 ‘현장’에 강하지 못했다.

더 배우기 위해 열심인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거나 공부를 포기한다면 ‘기회의 평등’마저 박탈당하는 셈이 된다. 다른 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는 교육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반값 등록금’ 같은 말로 한몫 보려는 포퓰리즘 의도는 버리고, 장학금 혜택 확대 등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다각도로 강화해야 한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준다는 전제로 ‘정원 외 기부입학제’도 추진할 만하다.

일자리를 쉽게 만들 수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발상을 바꿔야 한다. 지금 연간 800만 명 정도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을 연간 3000만 명쯤으로 늘릴, 관광을 성장산업으로 몇 단계 발전시킬 국책(國策)을 왜 관철시키지 못하는가. 마카오는 엔터테인먼트, 도박, 게임, 국제회의 등을 통해 연 50%의 관광산업 성장을 보여줬다. 일자리 만드는 정책에 반대하는 이념세력과 기득권세력은 ‘민생의 적(敵), 국민 행복의 방해세력’이다. 이들을 단호히 배격하고 규제와 장애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한다면 일자리 수십만 개를 1, 2년 안에 만들 수 있다. 의료관광 호텔 식당 가이드뿐 아니라 더 넓은 전후방 고용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싱가포르가 카지노 선진국이 돼 있는 세계다.

부자감세(減稅)는 안 된다고, 조금 잘나가는 중산층 봉급생활자에게까지 최고세율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창업에 더 많이 도전할 수 있도록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 일자리를 늘리는 길이요 ‘민생의 희망’을 넓히는 길이다.

교육·일자리·집·재산·빚 걱정 깊다


가계부채가 실로 걱정스럽다. 수많은 사람이 돈을 빌려 집을 샀는데 집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진다면 밤잠을 설칠 국민이 늘어날 것이다. 그들에게 ‘누가 돈 빌려 집 사라고 했나’라는 식의 정책을 편다면 ‘그래 내 탓이오’ 하겠는가. 잘난 정치인 비리는 뭉개고 덮으면서 우리 서민 중산층은 죽어보라는 것이냐고 반발하지 않겠는가. 곧 1000조 원에 육박할 가계부채, 그 이면에서 재미 보는 것은 은행이다. 은행들이 몇 조씩 이익을 내 외국인들에게 더 많이 배당하는 것이 맞는지, 보통 국민의 가계부채 금리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라 해도 내 집 없는 사람이 절반이다. 서민을 교통이라도 편한 곳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민생정치다. 역세권 사무실을 오피스텔 용도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면 소형주택 수요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소형주택 가격과 전세금 안정에 도움이 되고 결국 서민층에게 힘이 된다.

100명, 200명의 종업원에게 꼬박꼬박 월급 주려고 식은땀을 흘리는 중소기업인이 많다. 이들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집어넣어 몇 년씩 개발한 제품을 장기적으로 구입할 듯하다가 몇천만 원어치만 사주고는 구매처를 바꾸거나 자체 개발로 돌려버리는 대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횡포는 막아줘야 한다.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을 ‘초과이익 공유’라는 레토릭(수사·修辭)은 중요하지 않다. 피땀 흘려 종업원 먹여 살리는 중소기업들의 실제 애로를 풀어줘야 상생(相生)정책이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패배주의를 털고 다시 일어나 뛰어야 한다. 당의정 같은 구호가 아닌 진짜 실용(實用)주의로 ‘맞춤형 마이크로정책’을 더 발굴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지친 민생을 위해서다. 정권의 신뢰 회복은 그 결과로 가능할 수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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