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차기 대통령의 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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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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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년 11월의 차기 대선을 19개월 앞두고 재선 도전을 선언했다. 중국은 내년 가을 제18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새 국가주석이 이끄는 10년 기한의 5세대 지도부를 출범시킨다. 미중의 새 지도자를 상대할 한국의 18대 대통령도 20개월 뒤인 내년 12월 19일 선출된다.

화합·신뢰·소통의 리더 누구인가

동아일보와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는 각계 오피니언리더 100명에게 ‘차기 대통령이 추구해야 할 국정 가치’를 물어보았다. 많은 응답자들은 ‘화합 신뢰 소통’을 차기 대통령이 구현해야 할 우선가치로 꼽았다. 바로 이들 가치가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결여돼 있다는 안타까움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차기 대통령까지 갈 것 없이 일할 날이 22개월 남은 이명박 대통령부터 거듭 새겨야 할 가치들이다.

미국은 2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1911∼2004)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로 부산했다. 미국민들은 그를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특별성명에서 반대 당 출신의 레이건 전 대통령을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적이 없는 굳은 신념가’로 평가했다. 오바마는 “레이건이 소통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확신과 낙관이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필요하다”면서 “그는 미국인들에게 근면과 개인의 책임이라는 가치를 다시 일깨워줬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소통과 굳은 신념’이 위대한 리더십의 두 날개 같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는 화합 신뢰 소통의 리더십을 잘 보여줄 차기 대통령감이 있는가. 이 질문은 유권자인 국민에게도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대통령을 뽑아야 하느냐고 빈정대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만들어놓고 나서 ‘표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 ‘이민 가고 싶다’ 하는 건 소용없다. 그러기보다는 선거 전에 후보들의 자질에 깊은 관심을 갖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투자는 결국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예컨대 화합과 박근혜, 신뢰와 손학규, 소통과 김문수, 또 화합과 유시민이 어울리는 조합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국민이 이런 식으로 대통령 잠재후보들의 자질, 그리고 그간의 행동궤적을 자꾸 뜯어보고 공론화할 이유는 더 있다. 미완의 후보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깨는 노력을 더 치열하게 하도록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날 후보 시절의 김대중이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내세운 적이 있지만, 지금 18대 대통령 후보군 중에 ‘화합 신뢰 소통’의 가치를 충분히 구현할 것 같은 인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여망을 똑바로 읽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변화 발전하는 사람이라야 준비된 대통령감이 될 수 있다.

미완의 주자들 변화·발전 보여야

오바마 미 대통령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을 자주 강조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입국(立國)도 안 돼 있다는 뜻인가. 미국민이 분열돼 국민통합이 절실하고, 제도 면에서나 물질적으로나 국가기반이 부실하다는 뜻이다. 국민통합과 국가기반 확충이란 점에서 한국은 ‘네이션 빌딩’의 과제가 더 무겁다. 이제 우리 국민은 짧지만 값진 민주 헌정의 역사 위에서 ‘네이션 빌딩’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지도자를 만들어낼 때도 됐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활자 속의 헌법에서만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남북의 분단·전쟁(휴전)상태를 지속하고 있어 ‘진정한 네이션 빌딩’에 다가서지 못한 ‘실패국가’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남한만의 국민통합을 뛰어넘어 한반도 전체의 국민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요컨대 차기 대통령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이루지 못한 자유민주 통일이라는 진정한 네이션 빌딩에 도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우선 남한의 국민통합이 중요하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은 ‘원칙 있는 화합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불법에의 굴종까지 화합일 수는 없다. 레이건은 1981년 8월 항공관제사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자 복귀명령을 어긴 1만1345명을 해고하고 조직 자체를 해체시켜버렸다. 그래도 그는 ‘위대한 소통자’로 불렸다. 그는 또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소련 몰락을 이끌었지만 그렇다고 레이건을 전쟁주의자라고 매도하는 미국인은 없다.

남한의 풍요에 젖줄을 대고 있으면서도 반인륜적인 북한지배집단을 돕는 세력,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악의적 국가분열세력까지 끌어안고 보호하는 것이 국민통합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들 반(反)대한민국 세력에 단호함으로써 국가적 가치통합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 통일이라는 진정한 네이션 빌딩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길이다.

배인준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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