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의 대화]‘너 자신의 꿈을 따르라’

  • 입력 2003년 11월 1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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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야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가히 ‘민족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도대체 시험이 뭐기에 이렇게 온 나라가 함께 숨을 죽여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곧 수능시험 성적표를 받아들면 그게 무슨 운명의 계시라도 되는 듯 그 숫자의 높낮이에 따라 제가끔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로 하릴없는 발걸음들을 옮길 것이다. 단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가지고 이처럼 슬픈 희극을 연출하는 사회가 또 어디 있을까 의심스럽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이른바 ‘이공계 위기’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공계 위기는 선진국이라면 정도의 차는 있어도 다 겪은 현상이다. 다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한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심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곤 정부 부처마다 제가끔 ‘이공계 위기 대책반’을 구성해 다양한 분석과 전략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공계 위기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부산스러움이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음식점이나 상점의 경우에도 사람이 몰리는 곳은 점점 더 몰리고 일단 파리를 날리기 시작하면 좀처럼 파리채를 내려놓기 힘든 법이다. 정부와 언론이 이공계 위기론을 들먹일수록 학생과 부모들에게 이공계는 정말 가서는 안 될 곳이라는 인식만 더욱 강하게 박힌다. 결코 좋은 영업전략이 아니다.

본인에게는 손해가 될지언정 이공계를 지원해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희생해 달라고 호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여성들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여성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제발 아이를 낳아 달라고 조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면 제발 낳지 말라고 해도 낳을 것이다. 과학기술인의 행복지수를 올려놓기만 하면 너도나도 앞 다퉈 이공계를 지원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이공계 출신의 공직진출 확대방안은 일단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과학기술인의 행복지수를 향상시킬 대책을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톰 소여 홍보전략’을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벌칙이었던 페인트칠을 너무도 재미있게 한 나머지 서로 하게 해 달라고 매달리는 친구들에게 선물까지 받아 가며 일을 시켰던 톰 소여처럼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말 신이 나서 자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신나는 페인트칠을 해 보기 위해 줄을 설 것이다. 위기에 몰릴수록 더 긍정적인 광고를 해야 한다.

나는 지난 며칠간 아프리카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야생 침팬지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 온 제인 구달 박사를 모시고 온갖 다양한 행사들을 벌이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책 사인회, 언론 인터뷰, 강연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책 사인회 때마다 구달 박사가 가장 많이 써 주는 글귀가 있다. “너 자신의 꿈을 따르라”는 말이다. 그리고 ‘너’라는 말에 꼭 밑줄을 긋는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말씀이다.

방황은 젊음의 특권이다. 선택도 젊음의 특권이다. 나이가 들어 가족을 가진 다음 방황하는 것은 죄악이다. 잠자고 먹는 시간을 빼놓고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자. 일찍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굶어죽은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구달 박사는 결코 부자가 아니다. 일년에 300일 이상을 여행하며 지구촌 곳곳에서 무려 100회 이상 강연을 하지만 주머니엔 거의 돈 한푼 없이 다닌다. 강연료와 기부금은 모두 제인구달연구소로 보내져 침팬지 연구와 환경운동에 쓰인다. 이제 곧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후학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정말 자신의 궁극적인 꿈인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길 권한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이공계를 선택해 구달 박사와 같은 행복한 톰 소여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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