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대통령의 화환을 돌려보내다니

  • 입력 2009년 3월 18일 19시 57분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혹시 외곬으로 빠진 나의 독단이나 비약은 아닐지. 그러한 망설임 때문에 한 달 동안이나 혼자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고 되짚어보곤 했다. 그러고 나서도 역시 이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그냥 넘겨버릴 수는 없다고 작심하게 됐다. 지난달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자 청와대에선 대통령의 조화를 보내려 했다. 명동성당의 빈소에서는 장례식을 간소하게 하라는 추기경의 당부에 따라 대통령의 조화를 돌려보냈다(동아일보 2월 18일자).

비록 작은 뉴스지만 이것은 한국정신사의, 아니 한국역사의 새로운 기원을 긋는 사건이라고 나는 느꼈다. 한국인의 삶의 의식의 지평선에 이때 비로소 최고의 세속적 권력의 정점에 또 다른 최고의 정신적 권위가 맞서 우뚝 섰다. 그것을 이 뉴스는 상징적으로 시위해준다고 나는 보았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어쩌면 한국 역사를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도 이와 유사한 보기를 찾긴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로부터 ‘귀(貴)’를 일방적으로 관작(官爵)과 동일시 해왔다. 귀한 사람이란 오직 벼슬을 한 사람, 높은 벼슬을 한 사람으로 치부했다. 인격이나 품성, 학문이나 도덕성 따위는 뒷전에 밀어붙인 채 오직 벼슬의 있고 없음,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사람의 귀천을 가리는 배타적, 폐쇄적 가치관의 일원론이 한국사회를 수백 년 동안이나 지배해왔다.

세속적 권력에 맞선 정신적 권위

우리나라 가족제도의 희한한 유산인 가문들의 족보 자랑도 어느 시대, 어느 군주 밑에서 어떻게 벼슬을 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묻지 않고 오직 몇 대조 조상이 어떤 벼슬을 했다는 것만 내세우면 고만이다. 이러한 벼슬 지상주의, 감투 제일주의의 편벽된 ‘귀(貴)’의식은 민주화되고 산업화된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임금이 대통령이 되고 정승, 판서가 총리, 장관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따름이다.

장관 자리만 준다면 평소의 소신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전혀 다른 정책을 펴겠다고 나서는 따위는 하나도 놀랄 것 없는 장관 임용사의 항다반사이다. 속칭 보수 우파의 대통령 밑에서 장관 지낸 사람이 부총리 자리를 제수한다고 하자 소위 진보 좌파의 정부에도 ‘출사’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중요한 것은 장관 자리, 총리 자리, 곧 벼슬의 높이다. 그 자리를 제수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자리에 올랐는지, 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정통성이 있는 정부인지는 벼슬자리에 올라갈 때 아무도 거의 따져보지 않는 것 같다.

더욱 경탄해 마지않을 참으로 야릇한 정경은 한국의 이른바 대통령 문화다. 우리에겐 성공한 쿠데타도 마침내 단죄를 한, 민주주주의 역사의 자랑스러운 사법부 심판이 있었다. 무장 군인 일부가 총소리 몇 방 울리고 한강을 건너온 무혈 쿠데타가 아니다. 남쪽에서 엄청난 국민을 국토 위에서 국군을 풀어 살육하고 집권한 신군부의 두 장군, 바로 그 신군부의 쿠데타 과정에서 가짜 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려 한 사람이나 죽을 뻔한 사람이 차례차례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그러나 가짜 죄목으로 억울하게 처형될 뻔했던 민주화 투쟁의 영웅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자 민주화 투쟁을 같이했던 옛 동지 대신 자신을 처형하려던 신군부 출신의 두 장군 대통령을 청와대에 초청해서 희희낙락하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참으로 일반 서민의 좁은 식견으로는 요해할 수 없는 한국의 대통령 문화다.

金추기경 우리에게 큰 선물남겨

대통령의 자리란 무릇 귀한 것 가운데서 가장 귀하고 또 귀한 자리.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어떤 허물이든 말끔히 씻어져서 귀하고 귀한 존재가 된다는 말인가. 수많은 사람을 살육한 피의 세례를 받아 집권을 하고 권좌에서 물러설 때는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챙기고 나와도 대통령이란 귀하고 가장 귀한 사람이란 말인가.

아무리 강대한 왕국도 의(義)로움이 없으면 도적의 집단과 다름이 없다.(아우구스티누스) 최고의 권력에 맞서는 또 다른 최고의 권위, 의로움의 권위, 세속적인 권력에 맞서는 정신적인 권위. 그것이 있다. 한국에도 이제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로 남겨주고 가셨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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