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심정윤리’와 ‘책임윤리’

  • 입력 2007년 11월 28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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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올 고액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상이 백범(白凡)과 신사임당(申師任堂)으로 결정됐다. 그에 대해서 아직도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 결정에 나로서는 썩 잘됐다고 감격하지도 않지만 그렇대서 굳이 반대할 생각은 더욱 없다. 도대체 이런 인물의 선정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는, 이른바 ‘골든 벨’을 울릴 수 있는 ‘정답’이란 없다. 그것이 정상이고, 거기에 마치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맞다!’ ‘틀렸다!’ 하고 핏대를 세워 다투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이다.

백범과 신사임당을 무난한 인선이라고 받아들인 까닭은 역사와 현재를 생각해 보는 내 나름대로의 시각에서다. 나는 신사임당이 산 16세기는 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한국의 여성은 조금 안다. 그렇기에 신사임당이 과연 현대 여성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여성계 일부의 반발이 다소 설득력을 갖는 이론이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현대가 아니라, 또는 현대를 예상하고 하물며 현대를 준비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신사임당의 당대를 산, 왕조 시대의 전통 사회를 산 많은 여성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롤 모델이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한국 여성의 생활사는 우리의 현대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이어 왔고 앞으로도 이어 갈 것이다. 오늘의 한국 여성도 200년 후, 300년 후에 살게 될 여성의 롤 모델이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절대자) 앞에 직접 서는 것’(레오폴트 랑케)이다.

시대에 충실했던 역사 인물들

신사임당의 시대에는 못 살아 봤지만 나는 백범의 시대에는 그 말년을 같은 하늘 밑에서 살아 본 세대에 속한다. 어떤 의미에선 우남(雩南) 이승만이나 백범 김구(金九)는 일제 치하를 산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는 1945년까진 비존재(非存在)의 무(無)로 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갑자기 그의 강력한 존재가 현전(現前)한 인물이었다.

건국 과정에서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좌우 두 진영이 극한적인 대립을 벌이고 있었다. 우남과 백범은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엔 ‘민족진영’이라 일컫던 우파의 두 영수였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혹여 잘못 아는 것처럼 백범은 온건 우파, 하물며 친북 중도파가 아니라 오히려 우남보다 더욱 과격한 행동주의 우파 지도자였다. 심지어 합리적 우파 지도자 송진우 장덕수 암살 배후설에까지 거론됐던 백범에 대해서 미군정 치하 한국을 취재한 미국의 언론인 리처드 라우터백은 ‘올드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우파의 두 영수 우남과 백범이 갈라진 것은 1948년 유엔한국위원단 감시하의 선거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였다. 결렬을 거듭한 미소 공동위원회를 단념하고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도록 한 것은 우남의 이니셔티브였으며 백범은 그에 반대했다. 유엔한국위원회의 입북을 거부한 북한을 제외하고 감시 가능한 남한만의 선거로 수립될 ‘단독 정부’는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한다고 백범은 본 것이다(북한은 이미 1946년 김일성의 ‘단독’ 인민 정권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범은 우사(尤史) 김규식과 더불어 마지막 희망을 안고 38선을 넘어 김일성, 김두봉을 찾아가 이른바 ‘사김(四金) 회담’을 가졌다. 결과는 북측에 이용만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결과로 판단되는 정치가 행적

이 과정에서 우남과 백범의 정치 행적처럼 막스 베버의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대조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도 흔치 않다. 그때도 지금도 민족 통일을 희원하고 분단 고착을 막아 보려던 백범의 심정윤리엔 많은 사람이 동조한다. 그러나 이젠 그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우남의 정치적 비전과 결단으로 한반도 전체가 동유럽처럼 소비에트화되는 걸 막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것을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깨닫고 있다.

정치가의 행적이 단순한 심정윤리적 동기가 아니라 그의 결과에 의해서 판단돼야 한다는 것은 대선을 앞둔 오늘날 더욱 긴요한 요청이라 여겨진다. 사회적 약자, 일자리 없는 노동자, 북의 어려운 동포를 생각한다는 ‘뜨거운’ 심정이 아니라 그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방편을 ‘차가운’ 이성으로 강구하고 결과에 책임을 질 사람을 이번 대선에선 뽑아야 될 것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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