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은희]유전진단, 모든 병 찾아낼 순 없다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9분


신문을 뒤적이다가 반가운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엄지공주’로 유명한 방송인 윤선아 씨가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었다. 작년에 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아기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 역시도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어렵게 임신의 기쁨을 맛본 터라 그 모습이 더욱더 애틋하게 남았다.

얼마 후, 임신을 기다리던 한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친구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도 그녀처럼 착상 전 유전 진단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이다. 윤선아 씨는 평생 동안 괴로워한 자신의 유전질환이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일을 피하고자 착상 전 유전 진단을 받은 바 있다.

놀란 나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혹시 그녀와 남편이 심각한 유전질환의 가계(家系)를 잇고 있는지. 그녀의 답변은 이랬다. 남편에게 심한 아토피가 있는데 아이에게 아토피가 유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아토피가 유전되는 질환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아울러 착상 전 유전 진단으로 모든 질병을 다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착상 전 유전 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PGD)’이란 말 그대로 배아가 자궁 내 착상하기 이전 상태에서 배아의 유전질환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치명적인 유전질환이 대물림되는 일을 막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험관 시술이 필요한데,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를 채취하여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뒤 이 수정란을 인큐베이터에서 3일간 배양해야 한다. 그러면 수정란은 평균 8개 정도의 세포로 분열되는데 이때 미세한 바늘을 이용해 1, 2개의 세포를 떼어내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 바로 착상 전 유전 진단이다.

착상 전 유전 진단은 분명 유용한 방법이긴 하지만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알아둬야 할 점은 착상 전 유전 진단으로 모든 질병을 진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낭포성 섬유증이나 고셔병처럼 질환의 원인이 유전자의 결함에 있다는 것과 해당 유전자가 확실하게 밝혀진 질병만을 밝혀낼 수 있을 뿐이다.

아토피가 유전력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어떤 유전자에 의해 아토피가 나타나는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도 불가능하다. 또한 이는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착상 전 유전 진단이 자칫 아들딸 골라 낳기나 맞춤아기 시도로 변질될 가능성을 막고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생명윤리법’을 통해 태아에게 심각한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질환 60여 종만을 검사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착상 전 유전 진단은 말 그대로 진단일 뿐 치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착상 전 유전 진단은 단지 이미 만들어진 배아 중에서 유전질환을 가지지 않은 배아만을 선별할 수 있을 뿐, 유전질환을 가진 배아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모든 질환을 찾아낼 수 없으며, 더구나 질환을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10년 전에 개봉된 미국영화 ‘가타카’에서는 유전질환뿐 아니라 외모, 체격, 성격까지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골라주는 맞춤아기가 등장한다. 착상 전 유전 진단이라는 유용한 기술과 부모의 욕심이 만나면 자칫 맞춤아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 탄생이 이제 SF 영화 속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을지 모른다. 기술의 제한 없는 발전에 사회적 합의가 적절한 브레이크를 걸어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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