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한겸]‘CSI 서울’ 이래선 못만든다

  • 입력 2007년 11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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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CSI’를 보다가 전에 조사했던 총기사고가 생각났다. 병사 한 명이 어깨에 총을 메고 밤에 보초를 섰는데 갑자기 멜빵이 풀어졌다. 소총이 지면으로 떨어지면서 격발돼 대퇴부(넓적다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사선으로 이어지는 관통총창을 입었다. 대퇴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기에 헬기로 병원에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상이용사로 제대할 예정이었지만 군 교도소에 수감됐다. 최종 의무기록에 총창이 대퇴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관통됐다고 기술돼 수사관이 자해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전역을 해야 할 사람이 죄인이 됐으니 억울함을 호소해 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이 의뢰된 사례였다.

거짓말탐지검사에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총기검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총기를 수거해 실탄을 장전한 다음 바닥으로 3000번 정도 던졌는데 한 번도 격발되지 않았다. 군의 베테랑 수사관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격발될 수 있다는 대답과 없다는 대답이 반반이어서 진실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최종 감정을 내가 맡아 환자를 직접 살펴봤다. 허벅지 안쪽의 상처가 바깥쪽보다 훨씬 컸다. X선 필름을 입수해 확인했더니 대퇴골이 파열되면서 파편이 대퇴부 안쪽으로 몰려 있었다. 대퇴골 표면의 파열상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벌어진 형태였다. 일반적으로 탄두가 뼈를 뚫을 때 바깥쪽에는 탄환과 비슷한 크기의 매끈한 구멍이 생기고 안쪽에는 더 크고 불규칙한 구멍이 생긴다. 증거를 종합해 탄두가 대퇴골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관통됐다는 결론을 내려 그 병사는 억울함을 벗었다.

이처럼 과학수사에서는 단순한 내용이라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어 조각퍼즐을 짜 맞추듯이 풀면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의학은 법률상으로 문제가 되는 의학적 사항을 연구하고 감정해 그것을 해결하는 학문으로 과학수사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 많은 사람이 즐겨 보는 ‘CSI’는 미국 과학수사대의 활동을 다룬다. ‘별순검’은 조선의 과학수사대에 관한 드라마다. 오래전 TV에서 인기를 모았던 외화 시리즈 ‘형사 큐’는 미국의 법의관을 주제로 한 드라마로서 주인공인 의사 퀸시가 범죄 증거를 찾는 내용을 다뤘는데 법의관을 형사로 잘못 번역했다.

로빈 쿡의 유명한 소설인 ‘벡터(vector)’나 ‘마커(marker)’에서는 법의병리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법의관의 대부분은 병리학 전문의로 대학병원에서 질병의 진단과 사인 규명에 관한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소정의 시험을 통과한 전문가다. 따라서 법의관은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외국과 비교할 때 국내 법의학이나 과학수사의 연구 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대구 지하철 사고, 괌에서의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등 대형 참사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한국의 법의학은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외국과 다른 점은 한국의 법의관에게는 현장조사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범죄현장에서 시신감정을 매우 중시해 법의관의 지시가 없으면 함부로 시신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또 법의학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수를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200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면 대개 7, 8명의 법의관이 활동한다. 일본에서는 90여 개교의 의과대에 모두 법의학교실이 설치돼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20명 정도가 법의분야에 근무할 뿐이다. 첨단장비와 전문 인력을 꾸준히 늘릴 필요가 있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병리학교실 교수·국가지정 동결폐조직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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