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세상/변옥환]과학연구 혁명 ‘사이버 협업’

  • 입력 2007년 10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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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마니아층을 형성한 영화 ‘스타트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고르라면 공간이동 장면이 아닐까 싶다. 스타트렉에 나오는 우주탐사 대원이 외계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선인 엔터프라이즈호에 “스팍! 나를 올려 줘”라고 구조 요청을 하면 곧바로 공간을 이동해 모선으로 돌아간다.

최근에는 공간이동이 더는 공상과학영화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나와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물론 현재 기술로 인체를 공간이동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체의 정보를 원자 단위까지 저장하려면 10기가바이트(GB) 하드디스크가 은하계를 가득 채울 만큼 필요하다고 하니 물질 전송은 고사하고 정보 저장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체가 아닌 인간 지성의 공간이동은 과학기술계에서 e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이미 이뤄지고 있다. 첨단 정보기술(IT)과 고성능 연구망을 이용해 전 세계 연구자가 한 공간에 있듯이 사이버상에서 지식과 연구 성과를 나누며 협업 연구를 하는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해상도 모니터와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연구망을 갖춘 e사이언스 연구 환경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의료진이 희귀 암에 걸린 환자를 공동 시술한다고 치자. 각국 의료진의 전문성과 임상 경험이 사이버상에 모여서 최고 수준의 지식을 만들어 내고 수술을 가장 완벽한 형태로 마무리할 수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조류독감같이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위협이 닥쳐왔을 때 해당 지역 과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e사이언스 환경을 통해 협업할 수 있다면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e사이언스 연구 환경이 만들어 내는 효과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시공의 구애를 받지 않는 공동체를 형성하면 최고의 역량을 내는 집단지성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반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됐고 극한 도전과제만 남았음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다수의 전문 인력이 지역 간, 학제 간 장벽을 허물고 공동연구를 하는 것만이 극한 과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 집단지성의 기반이 되는 e사이언스 연구 환경이야말로 강력한 시너지효과를 통해 고급 두뇌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밝혀내기 위한 고에너지물리(HEP) 연구, 화석연료의 고갈 이후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융합 실험로 연구, 슈퍼태풍이나 지진해일(쓰나미) 같은 전 지구적 재앙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예측시스템 개발, 불치병을 없애고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첨단의료기술 개발 등 e사이언스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지성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한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업이라며 e사이언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영국과 일본 등 선진국이 e사이언스 연구 환경 구축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2005년부터 국가 e사이언스 구축 사업을 시작한 후발국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IT 능력과 뛰어난 연구 인력을 중심으로 바이오, 기상 지구과학, 분자 시뮬레이션, 항공우주 등의 분야에서 e사이언스를 기반으로 하는 융합연구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연구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하는 중이라 앞으로 더 많은 성과가 기대된다.

변옥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사이언스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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