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이수훈/“힐대사, 言路를 열어주세요”

  • 입력 2004년 8월 12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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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 대사가 부임했다. 한미간에 굵직한 현안이 많고 더불어 풀어가야 할 중대한 도전을 안고 있는 시기에 중책을 맡은 힐 대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한국은 지난 50여년간 안보를 비롯한 모든 방면에서 미국과의 깊은 연관 아래 발전해 왔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에 일대 변동이 초래된 21세기 초에도 미국은 한국에 중요한 국가이며, 한미관계를 잘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이 직면한 국가적 숙제다. 한미관계의 재정립은 피할 수 없는 도전이며, 이에 대응하는 방법과 과정을 가장 협력적이고 효과적으로 펼치는 지혜를 양국이 모색해야 한다. 이에 있어서 힐 대사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韓美관계 재정립 진통 심해▼

지난해 한미동맹 50주년을 맞아 많은 학술행사가 열렸다. 아이러니는 한미동맹 50년을 기리는 다수의 국내 논자들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미국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재조정에 대한 조정과 정리를 끝냈다는 점이다. 올봄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 차출 및 감군 결정 발표는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50년이면 장년인데 한국사회는 아직도 한미동맹에 대해 사춘기적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한미군과 관련된 변화 조치가 취해지면 한국사회가 홍역을 앓는데 그 연유는 한미동맹의 기본 성격이 군사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출발했고 냉전체제 하에서 공고해진 이런 성격의 한미동맹은 이미 재조정의 길로 접어들었다. 탈냉전과 같은 세계질서의 재편, 미국의 국가적 전략목표 변화, 한국이 세계 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상 변화는 불가피하게 한미동맹의 재조정 압박으로 이어졌다.

안보나 평화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영역에 속하며, 군사는 수단에 불과하다. 한미동맹의 성격을 정치적이고 지정학적인 성격이 주조를 이루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양국간 국익에 부합되는 일이다. 동맹 재조정 과정에서 미국의 국가전략적 목표와 한국의 목표가 최대한 수렴되도록 한미 양국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의 심화 과정을 통해 다원사회로 변했고 특히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생겨났다. 정보화도 혁명적인 속도로 일어났다. 또한 한국 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났는데 정치권에서 일어난 변화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지금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갈등과 혼란이 후자에 속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정계, 학계, 시민사회 내부에는 미국을 보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며 상충되기도 한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분화되어 있고 다양하다.

2002년 여름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초기에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후 사회적 이슈로 증폭됐다. 이 사건을 포함해 지난 몇 년간 한미관계는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순조로운 국가간 관계의 열쇠는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 및 이해에 대한 노력이다. 물론 한국이 미국측에 변화된 한국을 잘 인식시키는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이를 전제로 미국 대사가 한국에서 기울여야 할 노력이 있고 역할이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런 차원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다양한 통로로 한국 알아가길▼

힐 대사는 지난달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한국에서 적극적인 대화, 폭넓은 소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획일적이고 독점적인 사회가 아니라 개방형 네트워크 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계, 언론, 비정부기구(NGO) 등 모든 사회영역에서 변화된 한국의 실상을 포착할 수 있는 다원화된 대화와 접촉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전반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는 워싱턴에 효율적으로 알리는 유능한 전달자로서 대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 점에서 특히 신임대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수훈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 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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