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김병익/갈등을 넘어 대안 경쟁으로

  • 입력 2003년 9월 21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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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 사회는 이념적 갈등을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8월 광복절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는 경기장 부근에서 친북·반북 시위대가 충돌했고, 정치권의 신구파간 개혁 논쟁, 언론 매체간의 공방, 지식인들의 토의 등 진보와 보수간의 이념적·이론적 대결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 시민들을 양분하고 대치시켜 걱정스러운 국론 분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당겨 말하면, 나는 ‘갈등’이란 부정적 표현보다는 대안적 경쟁이란 긍정적 현상으로 이 양상을 해석하면서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미래위한 보수-책임있는 진보 기대 ▼

갈등이란 이익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관점과 관계의 충돌이다. 유신 시절에 겪었던 것처럼, 전체주의 사회라면 그것이 억제되거나 은폐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지금 갖가지 갈등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고 다양한 이해관계의 주장들이 스스럼없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근의 진보 보수간의 갈등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진보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보수가 그에 도전하고 있는 점인데, 이는 보수주의로 일관해 온 근대 이후의 우리 정신사에서 처음 겪는 일이다. 이 역전 현상이 기성세대에겐 심한 당혹감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른다.

진보 보수 세력이 횡적으로 분화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경우는 종적 분화를 하고 있다. 진보파가 대체로 386세대 혹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 보수파는 그보다 나이든 기성세대가 대부분이다. 이는 우리의 진보 보수 분화가 역사와 현실의 경험에서 일구어진 인식의 상반된 틀에서 생겨난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구세대의 보수주의는 6·25와 남북 대치, 4·19, 산업화의 추진과 성취의 경험 속에서 굳어진 정서적 정신적 구조이고, 젊은 진보주의는 좌파 이념운동, 사회정의를 위한 실천, 인터넷,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삶의 양식으로 생성된 기질적 이론적 구조다.

그랬기에 보수파는 전통적 가치에 집착하며 근대적 성장의 기여를 자부하고 부권적 권위를 내세우는 반면, 진보파는 전향적인 자세로 환경 노동 여성 등 약자 편을 후원하며 개혁주의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보수파는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획득한 교훈이 젊은 세대에게 전수되기를 희망하고, 진보파는 시대 변화에 따른 미래 지향의 가치 실현으로 변혁될 것을 요구한다. 그 상반된 자세 때문에 보수파는 수구 반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상유지주의자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진보파는 물정 모르는 막무가내식 근본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사회에 보수파는 많지만 보수주의자는 적고 진보주의는 강하지만 진보파는 약하다고 쓴 적이 있다. 국가 사회 문제에서 보수파가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보수주의 이론가가 의외로 적다는 점, 반면에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의 주장은 강력하지만 그 주장을 실제로 지지하는 인구는 빈약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아직까지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의 보수파는 현재적 현실로 그 인식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고, 진보파는 관념적 이상론에서 실천적 문제성으로 구체적 사유를 끌어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경험적 교훈과 자존심을 줄이고 미래의 비전을 찾을 것을 권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우월감을 넘어 실제의 책임감으로 현실을 인식하기를 당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 국민이 정책적 선택하게 해야 ▼

우리가 이럴 수 있다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대치와 혼란을 넘어선 타협의 토론장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상반된 해석과 평가를 놓고 조율과 조정을 통해 국민이 정책적 선택을 하게 되면 갈등은 오히려 국가 발전과 사회 통합의 활력으로 바뀐다. 이때 갈등은 경멸과 배제의 부정적 양상이 아니라 존중과 포용의 화해 조건으로 기능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활기찬 대안의 경쟁장이 된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사에서 처음으로 진입하는 ‘이념의 자유시장’에서 건강한 민주주의적 토론을 실험하는 중이다. 여기서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 실험을 두려워해 그것에 기꺼이 전향적으로 참여하기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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