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법정 스님이 길상사에 남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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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4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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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50선(選)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맨 위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소로는 교사 목수 측량기사를 거쳐 아버지의 연필공장 일을 돕다 1845년 7월 월든 숲에 방 한 칸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2년 동안 살았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자연 예찬과 문명사회 비판을 담은 ‘월든’을 썼고 마하트마 간디와 시인 예이츠를 비롯한 사상가 그리고 환경운동가들에게 두고두고 영감을 불어넣었다. 소로는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그대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마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 명료해질 것이다’라고 썼다. 법정 스님은 월든 호수를 세 번이나 찾아갔고, 저서 ‘무소유’나 ‘오두막 편지’에도 월든의 흔적이 어려 있다.

무소유는 본래 인도 자이나교의 전통이다. 자이나교 승려들은 철저하게 무소유를 실천하느라 몸에 실오라기도 하나 걸치지 않고 수도생활을 한다. 비폭력 무소유 채식주의도 자이나교의 교리에서 유래했다. 간디의 비폭력 독립운동과 무소유 정신도 자이나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깊다. 자이나교는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정신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현재 신도 수는 인도 인구의 1% 정도이고 인도의 국경선 밖으로 전파되지 못했다. 불교는 자이나교의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인도 국경선을 넘어 아시아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無所有 종교화해 나눔의 도량

법정은 1989년 인도를 여행하며 간디가 거처하던 집을 찾아가보고 그 간소함에 감명을 받는다. ‘그의 방은 수도승의 거처보다 훨씬 간소한 데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내 자신 지닌 것이 너무 많아 몹시 부끄러웠다.’ 스님은 1976년에 쓴 ‘무소유’ 수필 첫머리에서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라는 간디 어록을 인용한다.

소로는 인도철학에 심취해 쌀을 주식으로 할 정도였다. 소로는 다시 인도의 간디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법정 스님은 ‘내가 영향 받은 것이 있다면 간디와 소로의 간소한 삶’이라고 밝혔다. 위대한 사상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형성되는 가치체계라고 할 수 있다.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선물이다. 밤에 비행기를 타고 서울 상공을 지나가면 십자가가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도심 속에서 절은 찾아보기 어렵다. 길상사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추경(秋景)이 뛰어나다. 가을철이면 도심 속의 단풍 숲을 구경하기 위해 하루 5000명가량의 중생이 찾아온다.

대원각이란 이름의 요정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조선권번 기생 출신 김영한 여사의 마음속에는 평생 두 남자가 있었다. 하나는 사랑하던 백석 시인이었고 하나는 글을 읽고 존경하게 된 스님이었다. 두 남자는 모두 글을 잘 쓰고 정신세계가 여유로운 호남아였다. 터 7000평의 대원각은 재산 가치가 1000억 원대를 호가했다. 김 여사는 법정 스님이 설립한 ‘맑고 향기롭게’ 재단에서 활동하며 10년 동안 스님에게 간청하다시피 해 대원각을 부처님께 바쳤다.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근본도량 길상사는 이렇게 태어났다. 스님은 이 재단과 함께 장학사업을 벌여 30여 권의 저서에서 나오는 인세 수십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보냈다.

요정을 리모델링한 길상사는 여느 사찰처럼 일주문도 없고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도 보이지 않는다. 법고(法鼓)와 목어(木魚)도 몇 달 전에야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길상사에는 조각가 최종태 씨의 관음보살상이 있다. 최 씨는 마리아상으로 이름난 조각가다. 법정 스님은 관음보살상의 조각을 왜 최 씨에게 맡겼을까. 마리아상을 닮은 관음보살상은 법정 스님이 고 김수환 추기경, 이해인 수녀 등과 가졌던 교분과 함께 종교 화해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종교지도자들이 법정 스님처럼 다른 종교와의 화해에 관심을 쏟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갈등이 크게 줄어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名刹 만들어 후대에 물려줘야

삼각산에 비가 오면 끝자락 길상사에 새로운 실개천이 생긴다. 시원한 포말이 부서지는 작은 실개천이 경내를 휘감아 돌며 가슴을 파고드는 물소리를 낸다. 길상사의 사계를 카메라에 담아 ‘이토록 행복한 하루’라는 책을 펴낸 이종승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은 김 여사가 이 물소리를 들으며 대원각을 시주할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법정 스님이 “사리를 줍지 말라”는 유언을 해 길상사에는 스님의 부도(浮屠)도 남지 않게 됐지만 ‘무소유’ ‘종교 화해’ ‘나눔’의 정신을 잘 가꾸면 대한민국 명찰(名刹)로 후대에 전해질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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