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자화상은 누가 그리는가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8시 39분


비리의혹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을 보면 권력이 이런 모습까지 보일 수 있구나 하는 섬뜩함을 느낀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제한 발언이나, 야당 사무실에 대한 심야 압수수색이나 보는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또 집권 말기 정치권 줄대기를 막는다는 공직기강 특별감찰이란 것도 심상치 않은 내부 분위기를 전해준다. 모두 집권세력에서 나온 급보(急報)다. 최근 각종 의혹사건으로 인해 흐트러진 민심 위에 계속되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제때에 대응하지 못했다가는 정권 말기에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읽게 하는 메시지다.

집권세력은 결국 강수(强手)를 뒀다. 그런데 그 강수란 것이 신중한 선택이 아니다. ‘여기서 밀리면 자칫 끝장이다’라는 강박관념에서 집권세력에 대한 도전을 과감히 분쇄하겠다는 상기된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결론으로 보인다. 돌을 들기 전 한번쯤 전후좌우를 둘러보았어야 했다. 우선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헌법개정을 통해서라도 제한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느냐를 자문했어야 했다. 여기에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개헌하겠다는 특단의 각오가 필요하다. 일반 법률안처리도 단독으로는 힘겨운 집권여당이요 소수정권이란 사실을 너무 쉽게 잊은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을진대 공연히 정쟁거리만 자초한 결과다. 실제로 지금 야당의 공세나, 여론의 돌아가는 조짐이나 집권세력으로서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야당 사무실 심야 압수수색도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결의에 비해 되돌아올 역풍의 강도가 엄청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수(惡手)다. 먼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유사한 사례 때마다 압수수색에 나서고, 구속영장 청구하고, 또 기각되면 대검에 다시 고발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돼 있는지를 검토했어야 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정치행위는 두고 두고 논란의 전례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

▼악수와 패착의 연속▼

집권 말기의 권력누수와 정치권 줄대기를 막겠다는 발상의 공직기강 특별감찰이란 것도 당장 몰려올 부작용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패착(敗着)이다. 요약하자면 공직기강이란 간판을 내걸고 공무원들이 ‘허튼 일’은 하지 않는지 감시하겠다는 것인데 도대체 이런 발상이 어디 있는가.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항상 어디서나 감시당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로서는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 있고 민생행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칫 공무원조직만을 들쑤셔 놓는 결과가 될 것이 뻔하다. 설령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공직사회를 믿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역대 어느 정권도 같은 사안을 놓고 같은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누군가 인간 본성의 하나로 배신과 모반을 꼽았고, 이를 모른다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집권세력이 취한 일련의 행동은 즉흥적이란 인상이 짙고 결과적으로 되레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부담만 안겨줄 것 같다. 권력에 가까울수록 그만큼 행동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됐는가.

▼왜 믿지 못하게 됐나▼

역대 정권에서도 권력형 비리의혹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정권처럼 많은 각종 의혹설에 시달리는 정권은 없었다. 의혹이란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왜 믿지 못하게 됐는가. ‘우리는 각종 권력형 비리의혹사건에 개입한 적이 없는데 야당이 정략적 목적에서 터뜨리고 언론이 보도하기 때문에 의혹이 부풀려진다’고 집권세력은 항변한다. 여기서 집권세력이 분명히 알아야 할 대목이 민심과의 관계다. 바로 ‘민심은 집권세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민심의 눈에 집권세력은 어떻게 비치는가’이다.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여기저기 밖으로 나타난 집권세력의 모습, 스스로 그려온 자화상(自畵像)이다. 결국 자화상을 어떻게 그렸는가가 핵심이다. 정치의 거칠고 냉소적인 한 단면이지만 현실이다. 집권세력과 측근 인물들의 멀게는 집권 이전, 가깝게는 집권 이후의 언동과 행적을 설명하지 않겠다. 민심은 알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정권은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로 다가가며 그것은 각 주역의 이미지가 어우러져 만들어낸다. 그 자화상을 되돌아보라.

<논설실장>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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