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신기술피해자들에 대한 연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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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1786년 영국 북부 직물공업 도시 리즈에서는 방직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양털을 얼레빗질하는 기계가 이들을 몰아낸 것이 원인이었다. 시위대는 외쳤다. “이제 가족을 어떻게 부양하란 말인가? 자녀에겐 어떤 기술을 물려주라는 것인가?”

기계화는 몇 세대에 걸쳐 영국의 생활수준을 높였지만 산업혁명 초기에 전통적인 노동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분명치 않다. 명백한 것은 그 당시엔 가치 있었던 기술을 평생 익힌 많은 노동자들이 그 기술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됐을 때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기술의 효과가 노동자에게 위협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기술의 발전이 점점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더 많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대졸자와 저학력자 간의 임금 격차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상위 ‘1%’가 일반 고학력자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가는지 설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고학력자들도 쉽게 평가절하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더 많은 교육이 신기술 발전에 대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필자는 2000년 즈음 미국 사회를 둘러싼 불평등의 성격이 변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 전에는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것뿐이었다. 노동과 자본 간의 소득 분배는 비교적 안정적인 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동자의 몫은 급격히 감소했다.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신 보고서는 이런 현상이 다수의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기술 발전 추이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기술이 노동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는 더 갑작스러울 수 있다. 매킨지 글로벌연구소는 전통 노동시장과 사회구조에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10여 개의 중요 신기술에 대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많은 시간과 돈을 배우는 데 투자해 신기술로 무장한 근로자들도 새로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식산업의 자동화’를 통해 지금까지 대졸자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을 소프트웨어가 대신할 수 있다. 선진화된 로봇 기술의 도입은 제조업계 취업률을 낮추고 전문 의료진마저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신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을까. 18세기 리즈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새 기술을 배울 동안 누가 가족을 먹여 살리나?” 그들은 이런 질문도 했다. “만약 새로 배운 기술마저 더욱 새로운 신기술로 대체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늘날의 노동자들도 당시 방직공들의 처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빚을 지면서까지 배운 새 기술을 사회가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의 확대가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떨칠 수 없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 없다는 점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기술 발달에 대처하는 대안은 있을까.

필자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조금이라도 옳다면, 일반 시민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규칙을 지킨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중산계급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보험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소득을 담보할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또 새로 창출되는 부(富)가 점점 자본가에게 편중됨에 따라 사회안전망의 많은 부분은 수익과 투자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나면 보수주의자들이 ‘소득 재분배’의 폐해에 대해 어떤 식으로 입을 모아 반박할지 뻔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과연 대안은 있단 말인가.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신기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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