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盧대통령, 결단을 내려야 한다

  • 입력 2006년 10월 20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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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이든, 포용정책이든 그것의 목표는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김정일의 평양정권을 변화시키고 ‘옳은 행동’을 하도록 해 한반도의 평화를 관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양정권은 핵실험이란 ‘최악의 행동’을 했다. 햇볕과 포용은 실패한 것이다. 햇볕은 좋았는데 포용이 잘못됐다거나, 다 괜찮았는데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강경 일변도로 북을 몰아붙여 일을 그르쳤다는 등의 소리는 정략적 말장난이거나 허망한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햇볕과 포용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교류를 증진해 동족 간 이질감을 누그러뜨리는 등 남북 관계의 질적(質的) 변화에 기여한 측면은 그것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예측이 불가능한 불량(不良)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엄중한 현실 앞에서는 그런 긍정적 효과조차 무의미하다. 햇볕과 포용이 투입한 막대한 자금이 북의 핵무기 개발에 ‘종자돈’이 됐다는 부정적 결과만 부각될 뿐이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명제(命題)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전쟁 불용(不容)’은 우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주체일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해 핵을 가진 평양정권에 평화를 구걸하는 것은 이미 평화가 아니다.

‘북핵 불용’ 원칙이 깨졌으면

여당 사람들은 북에 대한 제재 얘기가 나오면 “그럼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고 발끈한다. 그리고 사회를 ‘전쟁세력’과 ‘평화세력’으로 양분하려 든다. 이런 식의 내부 분열은 위기의 불확실성만 가중시킬 뿐이다.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평양정권에 “우리는 그동안 친북(親北) 반미(反美) 소리를 들으면서도 당신들을 두둔하고 도와 주려 애써 왔지 않은가. 그런데도 당신들은 우리를 배신했다. 이제는 우리도 전쟁까지 각오할 수밖에 없다”고 했어야 한다. DJ도 그만 침묵해야 한다. 자신의 ‘햇볕옹호론’이 북핵의 현실 앞에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국론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숙고(熟考)하기 바란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첫째 원칙으로 ‘북핵 불용’을 내세웠다. 그것은 햇볕과 포용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원칙은 깨졌다. 원칙은 이 정권이 강조해 온 자주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전전긍긍(戰戰兢兢)해서야 스스로 나라와 국민의 자주와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에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꼽아 보라”고 했다. 이 듣기 민망했던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잘한 일’이 남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패한 포용정책을 과감하게 폐기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어물어물 말을 바꿔 가며 시간을 벌려고 할 때가 아니다. 지난날 쏟아 냈던 말들과 이념적 성향에 발목이 잡힌 채 미적미적 위기를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정파를 생각하거나 재집권의 정략을 계산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하고 우리의 후손에게 안전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것인지, 당면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노무현답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첫걸음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4억5000만 달러의 조건 없는 현찰이 평양정권에 들어갔다면, 그것이 핵무기 개발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낼 수 없다면, 금강산 관광은 끊어야 한다. 정부 보조금을 없애는 미세 조정으로는 상징적 압박의 효과조차 얻기 어렵다. 개성공단도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자금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포기할 수 있다는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핵 폐기 없으면 포용 없다’

포용론자들은 그럴 경우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북이 보복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앞으로는 핵을 손에 쥔 북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핵 폐기 없으면 포용도 없다’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대북(對北) 원칙을 분명히 하고 국론을 한데 모아야 한다. 그래야 북-미 양자(兩者)를 한 테이블에 앉히는 지렛대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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