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버리고 가자]이성재/장애인에 기회안주는 '벽'

  • 입력 1999년 12월 15일 19시 42분


우리가 20세기에 반드시 버려야 할 것 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아닐까 한다.

필자는 소아마비로 인해 1세때 장애를 입었다. 나와 같이 질병으로 인한 장애를 가졌건,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건, 산재로 인한 장애건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대단히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장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인격적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다. 집 근처에 국립초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거절당했다. 장애인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동네 친구들 중 상당수가 그 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1㎞나 떨어진 공립학교를 6년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의사가 되고 싶어 이과를 선택했다. 어린 장애인 중에는 의사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나처럼 불편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무척이나 강렬하고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입학 때와 마찬가지 이유로 거부당했다. 정신과의사나 소아과의사나 내과의사는 외과의사와 달리 앉아서도 진료를 할 수 있는 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의사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법대에 진학했고 운좋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나 검사를 원했지만 앞에서와 같은 이유로 현직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변호사를 개업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자 할 때 다시 한번 벽에 부닥치게 되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은 변호사라 할지라도 사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처가의 반대가 거셌다. 물론 지금은 그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들은 잘 겪지 않는 차별을 받은 것은 적어도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장애인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 때문이다. 유엔의 발표에 의하면 인구의 10%는 어떠한 형태든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이라고 한다. 장애인의 95%는 후천적 장애인이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난 뒤 질병 교통사고 산업재해 약물오남용 환경 등의 이유로 우연히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재활치료를 받을 기회도, 특수교육을 받을 기회도, 직업을 가질 기회도, 결혼할 기회도 모두 봉쇄하고 있다. 장애를 입은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근거없는 편견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은 무능력자가 아니다. 다만 이 사회가 장애인이 가진 능력과 적성, 재능을 발휘할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무능력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훌륭한 과학자로 클 수 없었을 것이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훌륭한 정치지도자로 우뚝 설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편의시설이 부족하여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회에서는 재활치료나 교육이나 취업은 먼 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450만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세기에는 한국판 루스벨트, 한국판 호킹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소외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성재(새정치국민회의 의원)

*다음회 필자는 서강대 박호성교수(朴虎聲·정치학)입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