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생쥐의 사랑 침팬지의 단식

  • 입력 2001년 7월 25일 18시 43분


복날에 개 패듯 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 같은 복날에 얼마나 많은 개를 몽둥이로 도살했으면 이런 끔찍한 비유가 우리의 언어생활에 끼어들었을까.

개들은 다양한 몸짓으로 뜻을 나타낸다. 주인과 장난칠 때는 눈맞춤을 하면서 귀를 세운다. 꼬리를 두 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시선을 피하면서 몸을 낮출 때는 항복했다는 신호이다. 매 맞아 죽는 개들은 슬픈 비명을 지른다. 요컨대 개들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정서를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생물학자들은 동물이 감정을 갖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를 주저했으나 최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물행동학과 신경생물학 연구에서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감정은 1차 감정과 2차 감정으로 나뉜다. 1차 감정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2차 감정은 다소간 의식적인 정보처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1차 감정은 공포감이다. 공포감은 생존 기회를 증대시키므로 모든 동물이 타고난다. 예컨대 거위는 포식자에게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는 새끼일지라도 머리 위로 독수리를 닮은 모양새만 지나가도 질겁을 하고 도망친다.

한편 2차 감정은 기쁨, 슬픔, 사랑처럼 일종의 의식적인 사고가 개입되는 감정이다. 동물이 사람처럼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되는 대상이 바로 2차 감정이다.

먼저 기쁨의 경우 많은 등뼈동물이 놀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듯한 사례가 관찰되었다. 돌고래와 물소가 좋은 예이다. 어린 돌고래 새끼는 물 속에서 몸이 떠 있는 상태를 즐긴다. 물소는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즐긴다. 또한 쥐가 놀이를 하는 동안에 뇌 안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 확인됐다.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은 사람의 뇌에서도 분비된다. 일부 동물이 사람처럼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많은 동물이 사람처럼 로맨틱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구애와 짝짓기하는 동안에 대부분의 조류와 포유류는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큰까마귀와 고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많은 새들과 포유동물은 사람이 사랑을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비슷한 현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사랑에 빠진 여자나 교미하려는 암쥐의 뇌에서는 도파민의 분비량이 증가한다. 게다가 포유류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물론 사람의 뇌에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여자가 어머니다운 행동을 보여줄 때 분비되는 대표적인 화학물질이다. 시상하부에서 합성돼 뇌하수체를 통해 혈류로 방출되는 호르몬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어머니의 몸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시작하며 그 결과 젖꼭지가 꼿꼿이 서게 되므로 당장 젖을 먹일 채비가 되는 것이다.

새와 파충류에서도 옥시토신에 의해 유발되는 행동과 비슷한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적어도 일부 동물이 사람처럼 로맨틱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로맨틱한 사랑이 인간의 전유물은 아닌 성싶다.

사랑을 느낄 줄 아는 동물은 사랑하는 짝을 잃었을 때 슬픔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슬픔을 느끼는 동물들은 혼자서 외딴 곳에 앉아 허공을 쳐다보고 있거나, 음식 먹는 것을 중단하거나, 짝짓기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예컨대 어느 수컷 침팬지는 어미가 죽은 뒤에 단식하고 결국 굶어 죽었다. 고래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는 광경을 보고 있던 어미 강치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었다. 가장 슬픔을 잘 느끼는 동물은 코끼리이다. 새끼나 가족이 죽으면 며칠 동안 밤샘을 하면서 시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돌고래는 죽은 새끼를 살려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동물들이 감정을 느끼는 증거가 속속 확보됨에 따라 적어도 일부 등뼈동물은 공포나 혐오감은 물론이고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 이를테면 기쁨 슬픔 분노 사랑 질투 연민 등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리가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인간에게 동물을 학대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인 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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