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한영심/인스턴트 음식에 대하여

  • 입력 1999년 6월 2일 19시 18분


여중생과 여대생 2백여명이 일주일 동안 먹은 것을 낱낱이 기록한 음식일기를 보면서 문득 10여년전 독일에서 생활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독일 청소년들은 콜라를 물처럼 마시고 햄버거 등 인스턴트 음식을 주식으로 먹다시피 했다. 두 딸이 이런 식습관에 물들까봐 마음고생을 했던 일들이 기억난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청소년들이 비만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고 의학계는 골다공증 대란을 경고한다. 이런 현상은 오랫동안 지속된 식습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조사대상인 여중생과 여대생의 음식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인스턴트 식품과 청량음료 섭취의 증가이다. 80년대 이후 핵가족화, 레저붐,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으로 인스턴트 식품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인스턴트 식품은 63년에 등장한 라면을 필두로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을 원료로 현재 수천 종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은 편리하지만 영양면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인체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는 40여종에 이른다. 이들 영양소는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대부분 얻을 수 있지만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하나라도 지나치게 적거나 많이 섭취하면 영양상 균형이 깨진다.

인스턴트 식품은 대체로 열량은 높지만 무기질 섬유질 비타민 등 영양소 함유량이 매우 낮다. 열량이 높아 비만이 되기 쉽고 성인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맛과 색을 내기 위해 첨가되는 발색제 보존료 인공색소 방부제 등 많은 화학물질도 건강에 결코 좋을 리 없다.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식생활 개선과 건강증진을 위해 정책적으로 영양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아이들이 소꿉놀이할 때도 계량스푼과 저울을 갖고 놀 정도로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요리는 중요한 과목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음식재료를 저울로 달아보고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양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건강의 소중함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영양소 함류량을 별로 따지지 않고 먹는 한국의 식사습관은 한 번쯤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대생조차 ‘다이어트란 굶어서 살을 빼는 것’으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영양과 건강’에 대해 무지하다. 건강은 결국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영양교육이 국어나 영어교육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문 잡지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다이어트 체험기를 보면 허황한 내용이 많다. 이를 그대로 믿고 실천할 수많은 국민과 그들의 건강에 미칠 폐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선진국에서 각종 다이어트 식품이나 건강식품에 대해 의약품과 비슷한 수준의 엄격한 규제를 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병이 발생하고 나서 고치려 들면 밑바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 예방의학은 그래서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의 영양교육과 올바른 식생활이야말로 가장 실천하기 쉽고 확실한 예방의학이다. 우리의 교육과 정책이 영양과 건강을 좀 더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한영심<숙명여대교수·식품영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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