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최창학]당신은 내게 李箱같았지요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르클레지오 씨에게.

먼저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계실 정도로 우리나라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데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오늘 이런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귀하와 나의 남다른 인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귀하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소설가였고, 나는 스물여섯의 나이로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작품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어느 출판사의 편집원이었습니다. ‘세계현대문학전집’의 편집을 맡았는데 그중의 한 권 속에 귀하의 ‘홍수(Le De`luge)’가 끼여 있었습니다.

소설가를 꿈꾸는 다른 사람처럼 나도 세계문학전집 속의 작품을 거의 다 섭렵한 상태로 프랑스 소설로는 프루스트를 거쳐 이제 막 카뮈의 작품까지 읽고 난 직후였습니다. ‘페스트’ ‘이방인’을 읽고 나서 귀하의 ‘홍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귀하의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그때까지 어느 작품에서도 체험하지 못했던 알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황홀을 체험했습니다. 프랑스어에 서툴러 원서 옆에 번역 원고를 놓고 대조해가며 읽었는데도 일종의 전율 같은 게 전신을 타고 흘렀습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보다도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지나칠 정도의 정밀묘사와 활자의 크기며 모양으로 회화성까지 노린 표현이 우선 의식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의식의 흐름 계열이나 누보로망 계열 소설가의 소설, 또는 해체시 계열 시인의 시에서 이미 낯이 익었지만 비슷하긴 하면서도 또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아니, 어째서인지 나는 귀하의 그 작품을 읽는 동안 그런 외국의 작가보다도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불후의 천재로 불리는 ‘이상’(1910∼37)이라는 선배 작가를 오히려 더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혹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상은 소설도 몇 편 썼으나 소설보다는 시로 우리 문학사에 굵은 획을 긋고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요절한 사람입니다.

‘홍수’ 이후 귀하는 많은 변모를 보여 훌륭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문명 저쪽의 이야기인 시적이고 고혹적인 ‘사막’을 비롯한 그 여러 작품 역시 황홀을 체험하게 하긴 했으나 ‘홍수’에서의 체험과 같은 황홀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상이 그렇듯이 노벨상도 때로는 잡음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다른 부문이야 말할 것 없고 문학부문에 있어서까지 정당하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잘 아시다시피 거부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노벨문학상은 전 세계 문인이,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라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꿈의 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소설가와 시인도 그 후보의 반열에 끼여 왔습니다. 충분히 받을 만한 수준에 있는데도 외국어로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아 못 받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도 받았는데 우리가 못 받은 건 정말로 번역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도 대학에서 30여 년 동안 소설을 가르쳐 왔습니다만, 세계 정상에 서신 귀하의 강의는 소설가를 꿈꾸는 우리 학생에겐 갈증으로 쓰러져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 같으리라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졌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상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소설가를 꿈꾸던 나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색다른 황홀을 체험하게 했던 이 시대의 위인과 인생, 또는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내내 건강하셔서 세계 소설사에 빛을 더할 소설 많이 쓰시기를 빕니다.

최창학 소설가 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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