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인자]한국 발레의 힘

  • 입력 2007년 4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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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럽을 다녀온 무용평론가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에 머무는 5일 동안 밤마다 무용 공연을 봤는데, 각기 다른 5개 단체 공연 모두에 한국인 무용수가 출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하나같이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으로 공연 팸플릿이나 포스터, 홍보책자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의 활약상을 그대로 입증해 준다.

최근 한국 무용수의 해외 진출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드라마나 대중가요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이 현대무용과 발레에 의해 유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무용수의 해외 시장 활약은 비단 외국에 체류하는 무용수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립발레단은 지난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발레극장에서 이곳 발레단과 대형 발레 ‘스파르타쿠스’ 합동공연을 가졌고, 현지 언론과 관객의 격찬을 받았다. 그곳 무용인들은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기량과 표현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동양인 무용수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잘못이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

국립발레단은 5월 폴란드의 우츠 국제 발레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한국 발레단이 적지 않은 액수의 공연료를 받고 유명 페스티벌에 초청된 것은 처음. 하지만 나는 공연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더욱 놀랐다. 한국적인 소재의 작품이 아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 ‘백조의 호수’를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메이저 발레단이 모두 레퍼토리로 갖고 있는데도 한국 발레단을 초청하면서 굳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축제 관계자는 “한국 국립발레단의 공연 자체가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1월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박세은의 그랑프리 수상, 2월 현대무용 이선아의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대상 수상, 3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주역 무용수 강수진의 카머텐처린(궁중무용수) 등극 등 세계를 무대로 국내외 우리 무용수가 연일 낭보를 전해 주고 있다. 지난해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 김주원이 무용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무용계로서는 기쁜 일의 연속이다. 박세은의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그랑프리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나 수영의 박태환에 비교될 만하다. 세계를 무대로 웅비하는 한국 무용수의 이런 저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국인은 예로부터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다. 손바닥 장단만으로도 거뜬히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나, 노래방에서 가수가 된 듯 몸을 흔들며 끼를 발산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무용 지도자의 열성과 성실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 참가와 함께 직업 발레단을 중심으로 유명 안무가와 트레이너 초청, 공동 제작 공연 등 국제 교류가 활성화된 것도 해외 무대에서 한국 무용계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보탬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과의 힘든 싸움을 이겨 내며 훈련에 정진하는 무용수 자신의 의지다.

이제는 한국의 무용수가 타고난 재능과 민족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만 남았다. 이들이 춤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 공연장을 자주 찾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번 주 막을 내린 국립발레단과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 합동공연 ‘스파르타쿠스’에 이어 5월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 6월에는 서울발레씨어터의 ‘코펠리아’가 초연된다. 공연장 봄나들이를 통해 우리 무용수의 끼와 예술성을 만나 보는 것도 지친 일상 속에서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박인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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