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에 비친 한국 ▼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들을 결정하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형편에 밝은 사람들은 우리의 소박한 바람이 어림도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 어린이들을 많이 입양한 그 나라들이 ‘한국은 어린이들을 외국에 마구 버리는 나라’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그리하여 ‘한국은 인권을 경시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한, 우리에겐 노벨 문학상이 앞으로도 그림의 떡으로 머물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꼭 그 이유만으로 우리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떠받드는 북유럽 국가들에 한국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인권논쟁이 좋게 비칠 리 없고, 그러한 시각은 한국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에 아무래도 인색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헌정 50년의 역사에서 인권은 대체로 소홀히 다뤄졌다. 특히 권위주의체제 아래에서 서신검열이나 도청과 같은 사생활 침범은 예사였고, 심지어 불법체포와 고문 등도 쉽게 자행되곤 했다. 의문의 변사 사건도 얼마나 많았던가. 이러한 가슴아픈 역사적 배경 때문에 우리 국민은 인권향상이란 차원에서 새 정부의 출범에 기대를 걸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이 정부의 지도자들이 지난날 인권탄압의 희생자들이었다는 사실에서,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인권유린이 완전히 사라진 나라를 만들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가 이제 지난날의 악습을 과감히 떨쳐버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몇가지 논쟁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 감청-고문의혹 밝혀야 ▼
이 계제에 분명히 해 두고자 하는 것은 북한당국을 향해 우리에게 총격을 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하수인으로부터 배후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수사해야 하고 또 그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엄중히 의법처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을 국내정치에 이용해 정권유지에 도움을 받겠다는 반민주적이면서 위험한 공작적 발상과 음모가 있었다면 이 기회에 뿌리 뽑혀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의 진상 조사에 치중한 나머지 수사와 관련해 보도되는 감청과 고문의 문제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지난 2년 사이 감청이 무려 2.9배나 늘어났다고 보도됐는데 왜 이렇게 늘어났는지 객관적 설명이 있어야 하고 감청영장을 발부함에 있어서 법원의 보다 더 신중한 판단이 요청된다. 도청은 더더욱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일부 보도와 같이 국민이 감청공포증 또는 도청공포증에 시달리게 된다면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야말로 권위주의 체제의 그것과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또 ‘고문주장’과 그것 자체가 조작이라는 시비도 철저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새로이 등장한 용어인 ‘외력(外力)’도 피의자에 대한 부당한 압력수단일 수 있다. 검찰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엄정히 수사해야 할 것이고, 아무리 경제 살리기가 중요해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여가가 없다고 해도 국회도 언론도 깊은 관심을 끊임없이 쏟아야 할 것이다.
인권탄압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시대가 바로 권위주의 시대이다.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항쟁이 일어나 어두웠던 시대를 끝맺게 하고 ‘민주화의 개시 단계’를 열었으면, ‘국민의 정부’는 이 단계를 인권의 철저한 보장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공고화(鞏固化) 단계’로 끌어올려야 할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는 자신의 시대적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낱낱이 밝혀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 현정부 민주화 완결을 ▼
오늘은 마침 권위주의 시대에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의 변사 또는 ‘고문치사’ 당한 최종길(崔鍾吉) 교수 25주기의 날이다. 참담한 비극으로부터 무려 4반세기나 지난 민주주의 시대에 와서도, 특히 유엔 세계인권선언 발표 50주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고문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 앞에 우리 모두 숙연한 자세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구시대적 망령이 완전히 이 땅에서 제거됐을 때 노벨문학상 수상의 쾌보도 날아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김학준(인천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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