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관용]헌재는 국회선진화법 심리 서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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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우리 의회민주정치가 한계에 부닥친 듯하다. 고난 속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경험, 여야 의원 생활 그리고 국회의장을 거친 내가 이 글을 쓴다는 것이 면구스럽기 그지없다. 스스로 책임을 느끼면서 글을 쓴다.

국회의 토론이나 타협은 오랜 세월 동안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투쟁 일변도의 야당과 청와대 지시에 순종만 했던 여당 사이에서 사치에 불과한 용어였다. 야당에서는 집권당과의 대화와 타협은 사쿠라 아니면 비굴과 굴종으로 여겼다. 여당에서는 일방적 강행만을 선택했던 관행의 그늘이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정치의 기본 정신은 내 주장보다 상대방의 주장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는 배려의 정신이다. 내 주장은 옳고 상대방 주장은 틀렸다는 생각으로는 토론이나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현실이다.

민주정치는 만장일치가 아니다. ‘다수에 의한 통치, 소수권의 존중’이다. 현재 국회는 이른바 선진화법(국회법)으로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 헌법 제49조가 정한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이 국회 운영의 기본원칙이다. 선진화법은 의원 60%가 동의하는 법안만을 상정 가능하게 규정해 이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위헌적이고 이해하기 힘들다. 이 법 개정 당시 이를 추진하는 의원에게 식물국회가 된다고 우려하자 “동물국회보다 식물국회가 낫지 않겠습니까?”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폭력국회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여야가 상대방 의견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소수의 횡포 앞에 다수가 굴복하는 현실이 되고 말 뿐이다. 국회 의결의 원칙이 다수결인지, 여야 합의인지 헌법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

우리 정당들은 정책 개발 능력이 미흡하다. 이 때문에 정당 차원의 입법 활동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정부 입법에만 의존해 왔다. 17대 국회부터 의원입법이 활성화됐고 현재 19대 국회에서는 의원입법이 무려 1만4000건에 이른다. 다행이다. 그러나 어느 의원의 지적처럼 ‘입법 활동 실적 쌓기’나 ‘지역구민 의정보고서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안타깝다. 정치인이 선거구민의 인기에 부응하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라고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최소한의 품격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법안 제출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예산이 수반되는 법안은 비용 추계를 정확히 해야 한다. 국회에는 예산정책처가 10년 전에 설립됐다. 그런데도 예산 추계 없는 입법안이 70%에 가깝다고 한다. 세심한 검토 없는 입법은 국가 예산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은 비교적 여론에 둔감한 경향이 있다. 경쟁 없는 지역주의에 의한 양당 독점구조 때문이다. 기득권 집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의식은 변하고 있다. 방심하면 버림받는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걸핏하면 대기업 오너들을 국회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요구한다. 전례가 별로 없는 새로운 상황이다. 잡음이 많이 들린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생산적이지 못하니 ‘불임(不姙) 국회’라 한다. ‘대화와 타협이 없으니 죽은 국회’라고 부른다. 상대 당 비방 일변도의 발언으로 ‘선거 운동장이 된 국회’라고도 한다. 귀담아들어주기 바란다.

국회 운영은 의원들이 결정해야 한다. 중앙당 간부회의에서 결정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중앙당의 공천권과 국회직 배분권을 버려야 한다. 국회의장의 실질적 권한과 권위도 복원시켜야 한다. 현행 국회법으로는 의장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국회법 개정사를 보면 ‘의장권한 축소의 역사’이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국회선진화법#민주정치#위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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