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찬희]‘묻지마 범죄자’ 정신치료 서둘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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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한국정신치료학회장
허찬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한국정신치료학회장
잇달아 일어나는 성범죄 사건과 ‘묻지 마’ 범죄로 불안하다. 무엇보다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해서는 범죄자들에 대한 정신치료(심리치료)가 요구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치료감호법을 개정해 2008년 말부터 성범죄자를 치료감호 대상으로 추가해 정신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필자는 2009년 법무부 치료감호소 내에 개설된 ‘성범죄자 치료재활센터’에서 정신 치료를 포함한 성범죄자 치료 및 재활을 담당했다.

이들을 치료하면서 느낀 점은 어릴 때 어머니와의 정서적 교감에 결핍이 컸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머니의 이미지는 ‘일에 시달리며 삶에 지친 모습,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느낌, 자신의 고민을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불쌍한 모습, 쌀쌀하고 냉랭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에게 고민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고, 하소연한다 해도 오히려 미움을 당할 것 같았다고 호소했다.

아동 성범죄로 무기징역 처분을 받아 세간에 널리 알려진 K의 경우, 어릴 때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려 횡설수설할 때 무당이 와서 굿을 하는데 자신에게 칼을 잡게 한 것, 술에 취한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가 거꾸로 어머니를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보니 이것이 바로 아이에게는 절망과 위협의 상태이며, 장차 타인의 사랑에 한없는 갈증이 생기게 되고 이게 충족되지 못할 경우 분노와 적개심으로 자란다.

정신치료에서 치료자는 환자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감정, 즉 ‘분노’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특히 ‘묻지 마’ 범죄자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사회가 자신을 냉대하고 소외시키며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분노는 억압될 경우 우울증을 포함한 여러 가지 정서장애를 초래하며, 그것이 폭발할 경우 성범죄를 포함한 여러 가지 폭력적 행동을 보인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소울은 “‘적개심’이 정서 장애에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르면 유능한 정신치료자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심리치료에서 분노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묻지 마 범죄’의 경우 상처받은 시기가 이를수록 범죄의 정도가 심각하다.

범죄자들은 가족 속에서 자라면서 생긴 분노를 그때그때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너무 무서워 화를 억압하기도 하고, 부모가 아예 하소연할 대상이 되어줄 수 없어서 분노를 해소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묻지 마’ 범죄 행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가족 속에서 개인의 정서적 경험과 적개심의 형성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하며 그래야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아가 재범을 방지할 수 있다.

‘성범죄자’ ‘묻지 마 범죄자’들에 대한 집중관리가 필요하다.

2009년 미국 뉴욕 주 및 뉴저지 주 내의 성범죄자 치료센터를 시찰한 적이 있었다. 먼저 엄청난 시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놀란 것은 엄청난 전문 인력의 규모였다. 뉴저지 주 성범죄자 치료센터에는 당시 400여 명의 재소자를 위하여 심리학자 30명, 사회복지사 25명이 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치료감호소의 경우 1000명 재소자를 위해 5명 정도씩 일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정부나 관련기관에서는 잠재적인 묻지 마 범죄자들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보건복지 관련 인력의 과감한 충원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부처의 새로운 중간 관리자가 바뀔 때마다 재범률의 통계적 수치를 낮추려는 일과성 노력은 지양해야 한다.

허찬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한국정신치료학회장
#시론#허찬희#묻지마 범죄#범죄자 정신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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