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태규]‘미국의 안철수’ 크리스티 주지사의 명쾌한 행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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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영상학부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영상학부
올 연말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길고도 험한 두 나라 대선을 지켜보면 독특한 두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은 1962년생 동갑인 한국의 안철수 교수와 미국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다. 두 사람 모두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결코 밝힌 적이 없으면서도 선거 분위기와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자세와 방법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공화당 경선 기간 내내 크리스티 주지사는 최고의 화제 인물이었다. ‘미국의 시저’이며 공화당의 ‘스타’ ‘구세주’로까지 불렸다. 그는 2010년 1월 민주당의 오랜 아성인 뉴저지 지사가 되었다. 주 검찰총장 시절 주 상원의원과 시장 등 공직자 130명을 부패 혐의로 기소해 전원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끊임없이 대통령 후보 출마설에 휩싸였는데 그때마다 지체 없이 강력하게 출마를 부인했다. 2010년 6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는 “대통령이 될 욕망도 없으며, 준비가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해 11월에는 “(내가 출마할) 확률은 제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내가 대선에 안 나간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살이라도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듬해 1월에는 “나는 대선에 나설 만큼 오만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당사자의 이런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들은 그가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는 보도를 수시로 쏟아냈다.

“출마 소문 좌시못해”불출마 회견


그를 포함시킨 여론조사도 계속됐다. 2011년 3월 퀴니펙 대학의 조사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제치고 현역 정치인 가운데 호감도 1위를 차지했다. 페어리 디킨슨 대학의 조사에서는 오바마와의 양자 대결에서 46% 대 40%로 6%포인트 차밖에 나지 않았다. 중립 성향 유권자 조사에서는 43 대 40으로 오히려 오바마를 앞섰다.

미국민들의 그를 향한 구애는 끈질기게 계속됐다. 낸시 레이건, 바버라 부시 등 전직 대통령의 부인들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잭 웰치 GE 전 회장 등까지 나서 설득했지만 크리스티 지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2011년 9월 27일 전국에 텔레비전 중계된 크리스티의 레이건 도서관 연설 때엔 한 여성이 “자식들과 손자 세대를 위해 대선 불출마를 다시 생각해 달라.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다. 당신이 대통령 되기를 원한다”고 울먹이듯이 말했다. 이에 크리스티는 “대단한 영예” “과분한 칭찬”이라고만 답했다.

이제 언론과 정치권 등은 크리스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가 분명하게 “노(No)”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는 전국적 관심과 조명을 즐기고 있다” “솔직하지 못하며 영리한 정치 게임을 하고 있다” “선거 운동의 성공에 필수 요건인, 순진한 척하며 핵심을 피하고 양동작전을 펴는 짓”이라는 비난에서부터 심지어 “출마 문제에 이렇게 우유부단하면 대통령이 될 경우 과연 결단력 있게 행동하겠느냐”는 질타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직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지명도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AP통신은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주 정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출마 요청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은 나의 당연한 의무다. 지난 몇 주 동안, 길고도 힘든 결정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은 나의 때가 아니다”라며 불출마 의사를 재확인했다. 공화당 후보 경선을 100여 일, 대선을 1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현재 부통령 후보를 권유받고 있다.

그가 왜 대통령 후보를 마다했는지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대통령 선거 과정이 자신의 뜻과 달리 소문과 의문, 의심으로 얼룩지는 것을 한시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불출마 공언을 끝까지 지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사나이는 이 나라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본질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심과 인기에 개의치 않는 분명함과 책임성에 대한 보상이었다.

한국의 안철수 교수도 2년여 동안 대선 출마설에 휩싸여 있다. 그 역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마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는 늘 선두권에 있다. 곧 출마선언을 할 것이란 추측만 끊임없이 무성하다. 크리스티와는 달리 어떤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그와 연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민주통합당의 후보 경선(8월 25일∼9월 16일)이 보름 안팎, 대선이 겨우 4개월여 남은 지금까지 온갖 소문과 의심이 난무하는데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 뿐이다. 그리고 9월에야 대선에 관한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누가 눈물로 출마를 호소하면 그제야 “예”라고 할 것인가?

安교수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대비


크리스티 주지사와 비교하면 정치대사인 대선을 대하는 안 교수의 정신자세와 접근방식에는 진지함과 성실함이 매우 부족해 보인다. 정치인 또는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결단력과 책임감 등의 덕목은 낙제점이다. 그를 보면 한때 크리스티에게 쏟아진 “순진한 척하며 핵심을 흐리는 영리한 정치게임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연상케 할 뿐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영상학부
#시론#손태규#대선#안철수#크리스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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