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원목]론스타 ISD분쟁 우리가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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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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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론스타가 최근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정부국제소송(ISD)을 제기할 의사를 통보했다. 이제 6개월 동안 만족할 만한 해결을 보지 못하면 ISD 절차로 넘어간다. 대다수 국민이 거부감을 갖는 ‘먹튀’ 자본이 도대체 어떻게 국내적 논쟁거리인 ISD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단 말인가.

페이퍼 컴퍼니 보호배제 장치 빠져


ISD는 기본적으로 국제중재이기에 양 분쟁 당사자가 중재재판의 관할권에 동의해야 한다. 우리 정부 측이 이에 동의해준 것으로 론스타 측이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BIT)이다. 이 협정은 한국 정부와 벨기에 투자회사 간의 분쟁이 발생하면 ISD로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것은 론스타의 벨기에 자회사인 LSF-KEB홀딩스이므로 LSF-KEB홀딩스와 한국 정부 간의 분쟁은 ISD에 회부키로 사전에 합의돼 있다는 것이다.

한-벨기에 BIT는 1974년 맺어졌으나 2006년 개정돼 2011년 3월부터 개정된 BIT가 발효됐다. 최근 체결되는 투자보장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 투자 규정들이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법적 장치는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보호 배제 조항이다. 협정의 당사국에 형식적으로만 회사를 설립해 놓고 실질적으로는 제3국에서 영업행위를 하는 투자회사들까지 투자 협정이 보호해 주면 제3국 투자자가 입맛에 맞는 투자 협정 체결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ISD를 제기하는 사례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포럼 쇼핑(forum shopping)’ 행위를 차단해야 하는 것은 국제상식이다.

그런데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은 벨기에 국내법에 따라 설립한 기업들을 모두 벨기에 투자자로 정의해 보호하고 있고, 페이퍼 컴퍼니 보호 배제 조항이 없다. 기업들에 대한 관대한 세금정책으로 조세 회피처 역할을 하고 있는 벨기에에는 수많은 페이퍼 컴퍼니가 설립돼 있는데도 말이다. 페이퍼 컴퍼니 보호 배제 장치가 가장 필요한 협정에 정작 이것이 빠져 있는 것은 문제다. 1974년 협정은 그렇다고 해도 2011년 투자보장협정에서 이런 치명적인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 결과 지금 겪고 있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LSF-KEB홀딩스가 실제로는 한국 내에서 영업행위를 해놓고, 우리 정부의 과세주권까지 부인하면서 버젓이 벨기에 투자자의 자격으로 ISD를 제기한 것이다. ISD 재판부는 제기된 협정을 근거로만 판정하므로 이런 제소를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 정부가 패소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아마추어적 투자협상 관행 보여줘


지금 국민이 할 일은 강력한 페이퍼 컴퍼니 보호 배제 조항이 있는 한미 FTA의 ISD 조항에 억지로 론스타 사례를 끼워 맞춰 FTA 독소조항 논쟁을 가열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 정부의 투자 협정에 대한 기본 인식과 협상 능력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물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되풀이해온 아마추어적이고 임기응변식 협상 관행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지적해야 한다. 투자 협정 협상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자문체계를 전면적으로 점검토록 주문하고, 특정 분야 진정한 전문가를 키우지 못하는 학계 및 관료계의 문화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투자 협상 업무를 놓고 관련 부처 간 관할권 분쟁이나 비협조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도 재점검해야 한다.

론스타 사태는 이런 모든 결함을 국민 앞에 드러낸 소중한 기회다. 이런 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지 못한다면 먹튀 자본의 뻔뻔한 공격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모습만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최원목#론스타#ISD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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