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용진]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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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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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현용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25년도 넘은 오래전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미국 대학의 한 전산실에서 처음으로 애플 컴퓨터를 보았다. 그때 불현듯 그것을 만든 사람은 이상주의적이고 남의 기계를 베껴 돈만 벌려는 사람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왕(Wang)이라는 컴퓨터 회사처럼 애플도 사라질 것이라는 좀 오만한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들 중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고 본다. 하지만 맞은 반과 틀린 반이 온전히 맞은 하나로서 스티브 잡스의 신화 속에 담겨 있다.

잡스의 위대함은 IBM이라는 거대 제국에 도전했던 창업 전반기 모습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그 이후 작품들은 모두 오래전 대형(big brothers)의 세상을 변혁하려는 그의 도전 속에서 태동한 것이다. 사람들이 잡스에게 붙이는 수식어의 대부분은 창조자, 발명가, 천재, 도전자, 모험가, 이단아 등의 단어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수식어는 모두 하드웨어적인 것이다. 오래전에 나온 애플 컴퓨터에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그가 한결같이 구현코자 한 것은 인간성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아마도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수식어는 위대한 휴머니스트일 것이다.

애초부터 잡스의 관심사는 삶의 창조에 있었다. 성능 좋은 컴퓨터를 발명하는 것이 그의 주관심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동업자들과의 갈등도 다 이런 데서 연유했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도 일종의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을 것이다. 그의 위대한 족적은 삶을 컴퓨터에 이입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낸 것에 있다. 그에게 컴퓨터는 삶의 창조를 구현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전산이라는 단어가 정보기술(IT)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기계와 소프트웨어는 발전이라는 단어 속에서 계속 변형되지만, 사람이 사는 기본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 원리 중 하나가 ‘소통과 사랑’이다. 잡스가 열망한 것은 아마도 소통과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계에 휩쓸려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세상이 나뉘고 성공과 패배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더 익숙해지는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 열망과 걱정으로 잡스는 창조적 삶의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구현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쳤다. 이런 면은 그의 삶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성공했다고 하는 IT 사업가들이 정치에 뛰어들고 자선 홍보를 하며 투자 동향에 쫑긋하면서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는 삶의 혁신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가 진정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그가 생각하고 만든 것에 대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구할 때뿐이었다. 과거 미국에서 8비트, 16비트 컴퓨터가 등장할 때 많은 사람이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들이 IBM 제국 안에서 돈을 벌려고 했을 때 잡스는 자신만의 업을 창조하려고 했다. 그래서 희생이 더 컸지만 결국 이것을 밑거름으로 오늘의 애플이 있게 됐다. 무려 30여 년의 결실인 것이다.

잡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과 그런 세상을 구현하려는 절대적 노력이다. 잡스 자신도 말했지만, 그는 컴퓨터 업계에서 힘겹게 창업해 평생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판 사람이다. 그가 얻고자 한 소득은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함께 소통과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을 위해 걸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만으로 그런 세상이 쉽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제2, 제3의 많은 잡스가 나오길 바라며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기나긴 도전과 창조로 세상의 빛이 된 잡스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현용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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