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병종]"땅아 미안해, 울지마"

  • 입력 2001년 6월 10일 19시 11분


땅의 신음 소리 같은 것을 듣는 때가 있다. 소리는 도심에서도 들리고 야외에서도 들리며 길에서도 들리고 산에서도 들린다.

허구한날 볼썽 사납게 짐승의 내장처럼 뒤집혀진 도심과, 온갖 쓰레기와 폐기물로 넘쳐나는 계곡과, 죽은 개구리처럼 허옇게 배를 드러낸 개천들에서 나는 이 신음 소리 같은 것을 듣는다.

더구나 요새 오랜 가뭄으로 거북 등처럼 갈라터진 땅에서는 신음 정도가 아니라 명재경각(命在頃刻)의 가쁜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쇠약해진 노모의 손등을 보는 듯 가슴이 아프다.

땅의 신음은 그대로 사람의 신음이요, 땅의 고통은 그대로 사람의 고통이다. 난개발의 회오리 속에 나무가 뿌리뽑히고, 산허리가 잘려 나가고, 강이 뒤집힐 때 어찌 홀로 사람만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석간수(石間水) 흐르던 계곡마다에는 카페, 음식점, 러브호텔의 원색 간판들로 어지럽고, 그러고도 모자라 허구한날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산을 깎아 내리고 모래를 파내는 굉음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땅에 가해지는 이 피학대음란증 같은 광란의 짓거리들은 대체 언제쯤이나 끝이 날 것인가.

이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땅의 파괴 행위에 대한 보응을 결국 우리의 자식들이 돌려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땅의 재앙이란 서서히 시작되나 가장 확실하게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뮌헨의 한 공원에서 겪었던 일이다. 벤치에 앉아 쉬노라니 유난히 개미가 많이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엄청난 개미들의 행렬 한 쪽에 작은 팻말이 꽂혀 있었다. ‘주변에 개미 서식지. 밟지 않도록 조심할 것.’ 개미도 독일 개미는 행복하겠구나, 씁쓰름하게 실소했다.

같은 땅 베를린에 살고 있는 한 한인 부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역시 공원에 놀러 갔다가 무심코 다 쓴 건전지 하나를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저만치에서 초등학교 5, 6학년이 될까 말까 한 여자 아이 하나가 걸어와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왜 이런걸 여기에 버리는가. 이 공원은 당신들만이 쓰는 곳이 아니다. 나는 물론 장차 내 아이들(세상에 고 조그만게 제 아이들이라니!)이 이용해야 하는 곳이다. 저런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땅을 망친다. 조심하라!”

부부는 그 조그마한 아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고스란히 수모를 당해냈다고 한다.

이제 여름 방학이 되면 수많은 인파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들 중의 허다한 사람들이 소위 선진국에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비로소 우리가 잃어버린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환경을 만나 부러워 할 것이다. 세련된 건축물과 거리 모습에 탄성을 지를 것이며 무엇보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하고 한 번쯤 한탄할 것이다.

한때 우리에게도 별이 쏟아지는 아늑한 강변의 추억이 있었다. 산천이 요란한 각양 각색의 간판들과 고기 타는 매캐한 냄새에 점령당해 버리기 전 그곳에는 시원한 솔바람이 있었고, 졸졸거리고 흐르는 물소리가 있었으며,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있었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날고 가을이면 푸른 하늘로 잠자리들이 날아 다녔다.

그러나 이제 모성처럼 푸근하고 정겹던 우리의 자연은 마치 천박하게 화장한 밤거리의 여자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밤거리 여자를 찾아 욕망을 배설하고 돌아서듯 산과 계곡을 찾아 거나하게 술잔 들이켜다가 잔뜩 쓰레기만 안겨주고 떠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산, 한국의 강은 깊이 병들어 신음한지 오래이다. 게다가 하늘마저 우로(雨露)를 내리지 않아 타는 목마름까지 겹쳐 있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천지간에 재앙을 알리는 조종(弔鐘) 소리로 가득하다. 한 번쯤 땅의 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도시에서나 산에서나 강에서나 들려오는 그 소리를.

땅의 신음과 땅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땅아 미안해, 땅아 울지마.’

김병종(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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