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진옥/욕심의 늪에서 벗어나자

  • 입력 1999년 10월 10일 19시 39분


가을 산사의 새벽 공기가 싸늘하다. 풀 끝에 맺힌 이슬도 차갑게 느껴진다. 먼동이 터올 때 서산에 걸린 눈썹 달은 남쪽으로 날아가는 외기러기가 연상된다. 벌써 깊은 가을인가 보다. 노인복지회관에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을 뵙기 위해 찾아갔을 때 그 분들에게서 늦가을의 싸늘함과 쓸쓸함을 느껴 못내 가슴 한 구석이 아팠다.

▼ 금전만능 세태 심화

외로움에 찌들어 가슴이 휑하니 뚫려 있고 가난함에 힘들어 땟국이 흐르고, 늙고 병듦에 고통스러워 구부러진 허리와 주름진 얼굴을 보며 나 또한 언젠가, 머지않아 갈 길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누구나 젊었을 때 ‘나는 저렇게 되지 않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도들의 장례식이나 화장식장에서 집전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때마다 수많은 주검들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차피 나도 저렇게 될 텐데’하는 허무의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마음 속에서 잡초처럼 들고 일어나던 욕망의 사슬이 가루 되어 흩날리는 백골의 허망함을 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본다. 그래서 장례식장과 화장장은 나의 선원(禪院)인 셈이다. 즐거운 생일이 있다면 눈물나는 제삿날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그 인생은 결코 성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욕심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나도 이 세상을 언젠가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떠날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는 것에 균형이 잡히게 된다.

요즈음 너무 사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요즈음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그랬던 것 같다. 고전소설들을 보면 끝에는 모두 잘 먹고 잘 입고 아들 딸 낳아 잘 살았다로 끝난다. 심청이도 왕비가 돼 아버지 소원 이루어 잘 살았고 흥부놀부도, 홍길동도 모두 그랬다. 한국에 들어온 종교들마저도 기복(祈福)적이거나 병 고치고 부자 되게 해주는 모습으로 변질돼 버린다. 종교의 본질적인 모습에서 크게 일탈해 한국식 종교로 변해 버린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국민을 위한 것인데 오히려 개인의 출세와 패거리 이익을 위해 정쟁이 쉴 사이가 없다. 법대로 되는 것이 없고 욕심에 맞지 않으면 법을 수 없이 뜯어 고쳤던 많은 독재자들을 우리는 봤다. 그 밑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옳은 말 한마디 못하고 붙어 있는 사람들도 수 없이 봤다. 정치의 목적이 국민을 위해 있음을 망각하고 자기 보신에만 급급했던 일들을….

비판과 지성이 살아 있어야 할 학교도 교수 채용에서부터 학생을 입학시키는데까지 교육이 목적이라기보다 장삿속이 더 깊어 배우는 사람들이 멍든다. 학문을해사회에봉사하겠다는 학생보다는 어떤 학교 어느 학과를 가면 돈 잘 벌고 출세하겠는가에 관심이 더 많다.

▼ 소외된 곳에 관심을

복지는 남의 어려움을 돕는 사업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아야 할 가난하고 소외된 분들이 오히려 복지사업을 하는 욕심 많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그들을 먹고 살게 해주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대기업이 돈을 벌어 고용창출을 했다고 하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일이지 우리들과 더불어 살려고 하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배고픔도 어느 정도 면했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살필 때가 됐다. 사는 목적이 돈을 버는 것만이어서는 안 된다. 일본이 돈만 아는 경제적 동물이라고 세계에서 비판이 일었던 것은 돈을 버는 목적이 그들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는 일부 기득권자들이 노인을 팔아, 국민을 앞세워, 장애인을 이용해, 노동자를 내세워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는 일은 없어져야겠다. 힘들고 어려운 자들과 서로 도우며 사는 사회가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고 지고 죽음의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주고 갈 모양인데 복의 그릇이 작은 자는 분에 넘쳐서 자식까지 망칠 뿐이다.

우리들 삶 밑에는 바로 죽음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깊은 자각이 있어야 하며 뒷면에 외롭고 병든 노인, 삶에 지친 장애인, 부모 잃은 청소년 가장, 향락의 구덩이에서 헤매는 어린 생명들의 고통의 비명이 있음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전해지고 개인의 삶이 풍요해지지 않겠는가.

진옥(스님·여수시 노인복지회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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