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사망신고 두번… ‘유령인간’된 어느 지체장애인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버려진뒤 농가입양 중노동…친가-양가서 모두 사망신고
극적상봉 친모가 친자소송

정신지체장애 2급인 성모 씨(34)는 두 살 때인 1977년 3월 친아버지에 의해 광주의 한 터미널에 버려졌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 아기는 인근 파출소로 옮겨졌고 영아보호소를 거쳐 전남 고흥군에 사는 손모 씨에게 입양됐다. 당시 손 씨는 막내아들이 죽자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성 씨를 입양해 막내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그대로 쓰도록 했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 성 씨의 친아버지 집에 성 씨의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성 씨 할아버지는 곧바로 손자를 사망 신고했다. 졸지에 망자(亡者)가 돼버린 성 씨는 이후 새 가족에게서 또다시 버림을 받았다. 지난해 성 씨의 양아버지가 사망하자 자식들은 ‘친동생은 이미 숨졌다’며 뒤늦게 막내 동생의 사망신고를 해버린 것. 성 씨는 결국 법적으로 두 번 죽게 됐고 가족관계등록부가 없는 ‘유령인간’ 신세가 됐다.

하지만 하늘은 성 씨를 버리지 않았다. 2005년 성 씨는 아들을 애타게 찾아온 친어머니 박모 씨와 극적으로 만나게 됐고, 그동안 처참했던 성 씨의 삶도 하나씩 드러났다.

박 씨에 따르면 성 씨의 학업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가 전부였고, 양아버지가 성 씨 앞으로 진 빚도 수천만 원에 달했다. 발견 당시 고된 농사일로 손과 발은 일그러져 있었고 경운기 사고 등으로 등과 쇄골에는 큰 상처가 패어 있었다. 게다가 양아버지는 재혼한 아내와 성 씨가 갈등을 빚자 성 씨의 청부살인을 의뢰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성 씨를 인천의 한 공장에 팔아넘긴 혐의로 2005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박 씨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아들이 노예처럼 일했고 손 씨가 죽자 그 자식들이 아들에게 상속 포기를 요구했고 여의치 않자 사망신고를 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성 씨는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무적자(無籍者)인 까닭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약조차 처방받을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성 씨의 신분 찾기에 나섰고, 현재 성 씨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근 전주지법에 친자 확인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소송보다는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신청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소송 취하를 권고한 상태다.

이에 대해 양아버지 가족 측은 “성 씨를 학대한 적이 전혀 없고 애초에 잘못된 호적을 바로잡기 위해 사망신고를 한 것일 뿐”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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