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1월 10일] 깍두기를 처음 먹은 사람이 조선 정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9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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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거시기 장터’ 홈페이지 캡처
‘전라북도 거시기 장터’ 홈페이지 캡처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는 어떻게 ‘깍두기’라는 이름을 얻게 됐을까.

80년 전 오늘(1937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는 김장철을 맞아 ‘지상 김장 강습’을 진행하면서 깍두기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3년 뒤 ‘조선 요리학’이라는 책을 펴내 홍선표 선생은 이 글에 “조선 정조(1752~1800)의 사위인 영명위(永明尉) 홍현주의 부인이 임금님에게 여러가지 음식을 새로이 만들어 드릴 때 처음으로 무를 썰어 깍두기를 만들어 드렸더니 대단히 칭찬하시고 잡수신 일로 여염가까지 전파하였다”며 “그때 이름을 각독기(刻毒氣)라 하였고 … 공주(충남 공주시)에 낙향해 깍두기를 만들어 먹은 까닭으로 공주에서부터 민간으로 시작된 관계로 오늘날까지 공주 깍두기가 유명한 것”이라고 썼다.

재미있는 건 깍두기를 처음 담근 사람이 “정조의 사위의 부인”이었다고 썼다는 것. 사위의 부인은 자기 딸이다. 홍현주가 다른 아내를 두었다는 기록도 없다. 따라서 이 글에 등장하는 ‘정조의 사위의 부인’은 홍현주와 혼인한 숙선옹주(1793~1836)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면 숙선옹주가 정말 깍두기를 처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 씨는 2011년 11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쓴 ‘[윤덕노의 음식이야기]<106> 깍두기’에서 “(홍 선생이) 별다른 근거를 대지 않고 숙선옹주가 깍두기를 처음 만들었다고 써놓았다”며 “조선에서는 시집간 공주나 사대부 부인들이 궁중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왕실 어른들을 대접했다. 숙선옹주가 이때 음식솜씨를 자랑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윤 평론가는 이렇게 ‘이때 음식솜씨를 자랑했을 수도 있다’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여지를 남겨 놓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먼저 숙선옹주가 홍선주와 가례를 치른 건 정조가 세상을 뜬 지 4년이 지난 1804년이다. 따라서 ‘시집 간 공주’가 다른 왕실 어른들을 대접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정조 임금에게 깍두기를 대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혼 때였다면 어땠을까. 시집가기 전 임금의 딸이 직접 요리를 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정조가 세상을 떠날 때 숙선옹주는 한국 나이로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말이 맞으면 숙선옹주가 여덟 살 전에 깍두기를 생각해 낸 ‘요리 신동’이었어야 하지만 역시나 관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만약 숙선옹주가 정말 깍두기를 처음 만들었다 해도 이 무 김치 요리를 처음 먹은 임금은 아버지인 정조가 아니라 오빠인 순조(1790~1834)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물론 윤 평론가가 쓴 것처럼 깍두기가 ‘서민들 허드레 김치’에서 발전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쭤본다. 여러분은 국밥을 드실 때 깍두기 국물을 넣으십니까. 아니 넣으십니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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