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젊은이들 어울려 힙합 댄스… “통일이 보이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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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한바탕 ‘놀이’ 통해 하나되는 한반도 청춘

6월 열린 ‘남북청년운동회’에서 최게바라 기획사 대표 최윤현 씨(‘동’자 바로 아래)를 비롯한 남북 청년 10여 명이 눈을 감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V자를 그리고 있다. 최게바라 제공
6월 열린 ‘남북청년운동회’에서 최게바라 기획사 대표 최윤현 씨(‘동’자 바로 아래)를 비롯한 남북 청년 10여 명이 눈을 감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V자를 그리고 있다. 최게바라 제공
“저는 이등병 때부터 ‘관심병사’였습니다. 1년 8개월 동안 정말 떠올리기 싫은 군 생활을 경험해야만 했죠.”

“그 이등병을 저는 3년이나 했답니다.”

한 20대 남성이 군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자 옆에 앉은 작은 체구의 20대 여성이 이렇게 맞받았다. 남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관객들 사이에서 일제히 웃음보가 터졌다.

1일 서울 은평구 통일로 청년허브에서 열린 ‘제1회 남북청년페스티벌’의 한 장면이다. 대화의 주인공은 남한의 ‘개구리 군복’을 입고 나온 신승준 씨(26)와 북한 인민군복을 입은 새터민 출신 정미화(가명·27·여) 씨.

사회를 맡은 페스티벌 총감독 이선비 씨(29)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군대 하면 사랑 얘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두 분은 어떠셨어요?”

신 씨는 첫 휴가 이틀 전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여자친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탈영하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습니다.” 남성 관객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 씨가 말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군대를 10년 가니까 입대하기 전에 다 헤어져요. 대신 남녀 모두 군대를 가니까 가끔 군 생활 때 로맨스가 생기죠. 저도 사실 군대에서 연애했는데 아침에 화장실 갈 때 윙크 정도 하는 게 애정 표현의 전부였어요.”

남북 젊은이들의 ‘일’ ‘사랑’ ‘고민’을 주제로 한 둘의 대화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기존의 남북 체제의 차이나 통일 방안 같은 딱딱한 주제였다면 불가능했을 분위기였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새터민 50여 명 등 약 300명의 남북 젊은이는 이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청춘을 공유했다.

북에서 온 형과의 어색한 만남

이번 페스티벌에서 감독을 맡은 이 씨는 서강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2012년 2월 교환학생으로 중국 칭화대(淸華大)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이 학교에는 북한 사람 7명이 유학 중이었다. 이 씨는 ‘북한 사람과 직접 만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기숙사에서 북한 학생과 같은 방을 쓰는 영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두 살 많은 ‘형’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씨가 처음으로 접한 북한 사람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형의 책상 앞에서 인사했다. 막상 만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어색하게 인사만 하고는 잠시 후 헤어졌다. 북에서 온 형과의 만남은 이게 전부였다. 5개월 뒤 한국에 돌아올 때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이 씨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형의 책상에 ‘형님, 더 가까이 지내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다시 뵙게 되면 더 많은 얘길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리고 위쥐안(于娟)이 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라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위쥐안은 2012년 33세 때 암으로 숨진 중국 푸단대 여교수다. 이 책은 그가 암 선고를 받은 뒤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을 묶은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메모와 책은 그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씨는 귀국한 뒤 여느 대학생처럼 취업 준비에 매달렸다. PD를 꿈꾸며 방송사 몇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그러다 올해 5월 ‘최게바라 기획사’라는 문화기획사 대표 최윤현 씨(29)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북한과의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남과 북의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최게바라는 지난해 2월 최 씨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만든 신생 기획사다. 당초 시작은 청년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창 기획사 설립을 준비하던 중 최 씨는 한 행사에서 20대 새터민들의 솔직한 고백을 들었다. “새터민은 늘 ‘관제행사’에 동원돼 뻔한 이야기만 한다. 우리도 20대 젊은이다. 진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또 다른 새터민 친구는 최 씨에게 “너는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내 취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를 그냥 새터민 친구로 대해온 최 씨는 가슴이 뜨끔했다. ‘내가 너무 속내를 보이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자신이 만드는 놀이터에 북한 청춘들이 함께하는 이벤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최 씨의 사연을 듣고 모인 남한의 젊은이는 이 씨를 비롯해 모두 6명. 광주에서 무일푼으로 상경한 신승준 씨,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를 수석 졸업하고 합류한 웹디자이너 이여원 씨(23·여) 등이다. 최 씨 등 7명은 매일같이 서울 마포구 성지3길의 60m² 남짓한 월세방에 모여 남북 청춘을 하나로 묶을 방안을 고민했다.

지난해 4월 첫 결실을 얻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공연장에서 ‘우리 그리고 친구’라는 주제로 제1회 남북청년토크를 열었다. 같은 해 11월 광진구 능동로의 한 카페에서 2회 행사가 열렸다. ‘서울 상경기’라는 주제로 부산에서 온 남한 청년과 함북 청진시에서 온 청년이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수다 떨 듯 털어놨다. 너무도 빨리 돌아가는 서울생활 앞에서 ‘촌놈’의 서러움을 이야기하자 남북 청년들은 모두 공감했다. 더이상 정치나 이념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최 씨는 2인 3각 달리기 등 남북 청년들이 몸으로 부딪쳤던 ‘남북청년운동회’, 소주와 막걸리를 나눠 마셨던 ‘남북청년 한잔’ 등 관련 행사를 마련했다. 올해 6월에는 10여 명이 자전거를 타고 임진각까지 다녀오는 ‘남북청년자전거’ 행사가 진행됐다. 출발지인 경기 고양시에서 임진각까지 거리는 29km, 자전거로 왕복 6시간이 걸렸다. 땀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날 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새터민 이향 씨(21·여)가 최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국에 온 지 4년째인데 오늘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어요. 이런 시간을 마련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놀이로 준비하는 통일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주제로 7월 열린 제5회 남북청년토크쇼에서 새터민 강춘혁 씨(오른쪽)가 힙합 공연을 하고 있다. 최게바라 제공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주제로 7월 열린 제5회 남북청년토크쇼에서 새터민 강춘혁 씨(오른쪽)가 힙합 공연을 하고 있다. 최게바라 제공
남북청년페스티벌은 ‘1년에 한 번씩 남북 청년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놀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판이 커지자 사람도 더 필요했다. 이 씨는 올해 10월 일면식도 없는 함북 온성군 출신 조동현 씨(30·한국외국어대 중문과 4학년)에게 연락했다. 2000년 탈북한 그는 춤추는 걸 좋아해 남한에서 비보잉팀에 들어가 춤을 배우고 있었다. 조 씨는 탈북하던 중 중국에서 아이돌그룹 ‘핑클’ ‘H.O.T.’ 등의 영상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은 헤어스타일에 비닐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조선말 잘하는 중국인이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이들이 춤추는 손짓 발짓을 따라하다 어느새 춤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2008년 마침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조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비보잉팀을 찾는 거였다. 소문만 듣고 조 씨를 찾아 나선 이 씨는 다짜고짜 “함께하자”고 말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조 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동료 2명과 함께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해 아이돌그룹 갓세븐의 ‘에이’와 티아라의 ‘롤리폴리’에 맞춰 춤을 췄다.

힙합 가수로 활동하는 새터민 강춘혁 씨(28·홍익대 회화과 4학년)도 동참했다. 강 씨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북한을 ‘디스(비하를 일컫는 힙합 용어)’하는 내용의 랩을 해 화제를 모았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강 씨는 전공을 살려 무대를 장식한 그림을 그렸다. 미술가 현지윤 씨(27·여)가 함께 작업했다. 현 씨는 음악에 맞춰 몇 분 만에 그림을 그려내는 이른바 ‘라이브 페인팅’ 전문가다. 두 사람은 ‘남북 청년’이라는 소재에 맞게 ‘군모를 바꿔 쓴 남북 군인’ 그림을 행사장에 선보였다.

한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노지숙 씨(27·여), 초등학교 교사인 송기인 씨(26·여) 등 남북 젊은이 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행사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잠을 자며 준비했다. 모두 무보수였다.

이번 페스티벌에 들어간 비용은 약 1300만 원. 십시일반 모은 돈과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으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남북 청년들은 무대 한쪽에서 음악에 몸을 맡겼고, 토크쇼도 했다. ‘두부밥’ 같은 북한 음식을 팔기도 했다.

최게바라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보람만큼이나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남북 젊은이들이 함께할 자리를 마련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최 씨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통일이라는 주제의 딱딱함을 깨고 싶었다”며 “통일(을 꿈꾸는 과정)은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게바라는 연말에 다시 한 번 남북 청춘을 한자리에 모은다. 바로 ‘남북청년파티’다. 남북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놀면서 하나가 되고 있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힙합#남북#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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