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빌려주면 ‘관광진흥법 위반’… 에어비앤비, 한국에선 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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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탐사기획 프리미엄 리포트/‘글로벌 빅마켓’ 공유경제]규제-기득권 벽에 막힌 한국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지난해 11월 자동차부터 육아용품, 전자제품, 교육 서비스까지 생활 속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며 출범한 ‘다날쏘시오’. 이 회사는 시작 단계부터 사업이 삐걱거렸다. 현행법상 여행이나 출퇴근 목적으로 개인들끼리 차를 무료로 공유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차량을 개인끼리 연결해주는 대가로 쏘시오가 수수료를 받으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다. 교육이나 지식 등 무형의 서비스를 공유하는 것도 학원 등 기존 사업자의 반발이 거세고 ‘불법 과외를 주선한다’는 지적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소유’가 아닌 서로 빌려 쓰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공유경제가 한국에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규제와 기득권 사업자들의 반발로 첫발도 떼기 어려운 상황이다.

○ 규제와 기득권 반발에 시작부터 ‘삐걱’

전 세계적 숙박 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서울’을 치면 300곳 이상의 국내 숙박 시설이 검색된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현재 한국에서 관광진흥법의 관광숙박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자신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돈을 받고 빌려주면 법 위반이다. 개인이 자신의 집을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등록했더라도 한국인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면 처벌을 받는다.

에어비앤비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를 사실상 방치했던 정부는 2월 ‘신산업 육성·규제 완화 등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숙박 공유 서비스의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공유 민박업’이라는 항목을 신설해 시범 지역(부산 강원 제주)의 230m²(약 70평) 미만 주택에서 연간 최대 120일간 숙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규제 프리존 특별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도 공유경제 성장의 장애물이다. 공유경제의 대표적 기업인 우버가 한국에서 철수한 데 이어 지난해 말 등장한 심야 콜버스 역시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을 겪고 있다. 이 서비스는 심야에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서울 강남역 등지에서 승객과 대리운전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승객을 빼앗긴 택시 운전사들이 “노선이 정해지지 않은 버스 영업은 불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정부는 영업시간대 조정을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지만 당초 심야 콜버스가 소비자들에게 준 혜택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글로벌 국가들 ‘공유경제’를 성장동력으로

▲미국에서 공유경제를 이용하면 7달러에 서핑보드를, 30달러에 미니밴을 하루 동안 빌릴 수 있다. 출처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
▲미국에서 공유경제를 이용하면 7달러에 서핑보드를, 30달러에 미니밴을 하루 동안 빌릴 수 있다. 출처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
공유경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전 세계적인 흐름은 이미 국가나 지역의 특징을 반영해 새로운 산업 형태로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차량 공유 서비스 회사에 대한 합리적 규제와 관리를 위해 ‘운송네트워크회사(TNC)’라는 새로운 사업 범주를 신설했다. 우버 같은 차량 공유 업체가 사실상 합법의 틀 안에서 영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정장과 넥타이, 벨트, 구두 등을 빌려 쓸 수 있는 공유경제 서비스 ‘열린 옷장’. ‘열린 옷장’ 홈페이지 캡쳐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정장과 넥타이, 벨트, 구두 등을 빌려 쓸 수 있는 공유경제 서비스 ‘열린 옷장’. ‘열린 옷장’ 홈페이지 캡쳐
전 세계 사업자들이 합종연횡 하는 공유경제 모델도 나타나고 있다. 우버에 대한 자본시장의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에 맞서 미국의 리프트, 중국의 디디콰이디, 인도의 올라, 싱가포르의 그랩택시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상호 연계 운행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각각의 앱을 사용하는 여행자가 다른 나라로 갈 때 협력을 맺은 업체의 앱이 자동으로 연동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한국 특성 반영한 공유경제 필요

한국에서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공유경제 산업을 키우려면 ‘공유경제 특별법’ 같은 혁신적인 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송순영 한국소비자원 선임연구위원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개별 법령에서 공유경제를 제한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규제 일괄 완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정부가 현행법 체계 내에서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

공유경제 기업들 역시 기존 업체들을 기득권이라고 무작정 몰아붙일 게 아니라 전체 파이를 키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가령 샌프란시스코 지역 호텔의 투숙률은 에어비앤비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2008년 78.9%에서 2012년 82.7%로 높아졌다. 숙박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전체 여행객 수가 늘고, 여행객이 머문 도시에서 전체 숙박 서비스가 활성화됐다는 의미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 제도에 적합한 공유 서비스를 찾아내고 개발한다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한국식 공유경제의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무경 기자 fighter@donga.com·정세진 기자
#공유경제#글로벌 빅마켓#규제#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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