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獨 파견기간 제한 없애 ‘유연한 고용’… 제조업 생산성 높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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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노동개혁 현장을 가다]<下>노동시장 활기 불어넣은 파견제도

독일 라이프치히 BMW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차 ‘i3’를 조리하고 있다. BMW는 고용 유연성 확보로 경쟁력을 확보한 대표적인 회사다. BMW그룹 제공
독일 라이프치히 BMW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차 ‘i3’를 조리하고 있다. BMW는 고용 유연성 확보로 경쟁력을 확보한 대표적인 회사다. BMW그룹 제공
“독일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노동시장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유연한 인력 수급구조’였습니다. 경기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인력을 언제든지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되면서 기업은 훨씬 탄력적인 경영전략을 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난달 16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상공회의소(DIHK)의 슈테판 하르데거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파견(TAW·Temporary Agency Work)’은 독일의 노동 유연성을 가능케 한 대표적 제도로 꼽힌다.

○ 독일 노동시장에 활기 넣은 파견

독일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하르츠 개혁을 시작하면서 ‘한 근로자를 2년 이상 같은 기업에 파견할 수 없다’는 기간 제한을 철폐했다. 그해 전체 취업자(15∼65세)의 1.2%(2667만 명 중 33만 명) 수준이었던 파견 인력은 2011년 3.1%(2835만 명 중 88만 명)로 급증했다. 이후에도 파견 인력은 연평균 83만∼88만 명으로 전체의 3%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파견 인력의 70%는 남성, 30%는 여성이다. 여성이 파트타임으로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출했다면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남성들은 파견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파견 인력은 ‘파견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파견회사들은 고객 기업들이 필요로 할 때마다 인력들을 공급한다. 독일 내에서는 물류, 자동차, 조선, 기계 등의 업종에서 파견 인력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 홀거 샤퍼 박사는 “2009년 독일 전체의 산업생산성이 약 5% 떨어졌음에도 인력 구조조정이 없었던 것은 파견 등을 통해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파견업체연방고용주협회(BAP)에 따르면 파견회사와 새롭게 계약을 맺은 인력들의 64%는 실업상태였다. 파견 인력들의 임금 수준은 일반 기업 정규직의 약 80∼90% 수준에 달한다. 일부 전문 인력은 훨씬 높은 임금을 받기도 한다. 독일 파견회사들은 소속 인력들이 파견 업무를 마치고 일을 쉴 때도 기본급을 주고 의무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파견 인력들이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는다는 얘기다. BAP의 미하엘 케르스텐 변호사는 “TAW는 고용주(기업)나 고용인(근로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 ‘
불법 파견’ 딜레마에 갇힌 한국

한국 노동시장에서 파견제도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국내에서 제조업 생산라인은 원칙적으로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자동차 생산라인에 다수의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투입해 왔다. 2012년 2월 대법원이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 파견돼 일하던 최병승 씨에 대해 ‘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확정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차는 올해까지 사실상 파견 형태였던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 3638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문제는 20% 안팎에 달하는 합법적인 사내도급 공정도 ‘불법 파견’으로 지목받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원청업체의 직접적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면 사내하청(도급)으로 인정된다”며 “하지만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자동차 생산라인에서는 트집을 잡으려 들면 어떤 공정도 불법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우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 제조업은 파견 인력을 거의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파견은 무조건 불법’이라는 시각 때문에 일부 합법적인 공정에서도 활용을 줄여나가는 분위기”라며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노동시장 경직성은 곧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BMW그룹의 근무 유연성 확대

독일에서는 파견 외에도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이뤄져 왔다. BMW그룹의 ‘근무시간계좌제도’는 독일 내에서도 개별기업 노사가 이끌어낸 가장 생산적 협상 결과로 거론된다. 이 제도는 쉽게 말해 근무시간과 보수를 분리시킨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자동차 생산량이 줄면 근무시간은 줄어들지만 임금은 그대로 유지된다. 반대로 생산량이 급증해 초과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추가로 지급되는 임금은 제한적이다.

근무시간계좌제도는 1996년 4월 독일 내 BMW그룹의 모든 공장에 일괄 적용돼 현재 독일에서 일하는 8만4000명의 근로자 중 7만2000명이 적용받고 있다. BMW그룹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잦은 시장 변동성에 맞춰 작업량을 조절할 수 있어 2008년, 2009년 금융위기 당시 큰 위력을 발휘했다”며 “직원들로서도 자동차 판매가 부진할 때 임금이 삭감되거나 고용 불안에 시달릴 염려가 없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BMW그룹은 2013년 이에 더해 교대근무 시간 및 형태 변경, 생산인력의 공장 간 이동 유연화 등에 대해서도 노사합의를 맺고 근무 유연성을 확대하고 있다.

베를린=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파견기간#고용#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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