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1부/미래형 직업을 찾아서]<2> 스위스 호텔리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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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고객 원하는건 뭐든지”… 관광대국 이끄는 ‘만능 직업’

지난달 20일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 아로사 시의 발트호텔에서 1년차 호텔리어인 레토 켈러 씨(왼쪽)가 독일 바스프사 직원과 이날 진행할 행사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호텔전문학교와 관련 직업학교에서 철저한 현장 중심의 교육을 받은 스위스의 호텔리어들은 취업후 빠르게 호텔 실무에 적응한다. 아로사=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지난달 20일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 아로사 시의 발트호텔에서 1년차 호텔리어인 레토 켈러 씨(왼쪽)가 독일 바스프사 직원과 이날 진행할 행사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호텔전문학교와 관련 직업학교에서 철저한 현장 중심의 교육을 받은 스위스의 호텔리어들은 취업후 빠르게 호텔 실무에 적응한다. 아로사=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호텔리어는 고객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생수통 나르는 허드렛일부터 최고경영자(CEO)가 필요로 하는 의전까지 그야말로 만능이 돼야 합니다.”

지난달 20일 스위스 아로사 시(市)의 발트호텔에서 만난 레토 켈러 씨(28)는 이 호텔의 이벤트와 콘퍼런스 운영 책임자다. 켈러 씨는 이날 독일 바스프사가 세계 40개국에서 초청한 직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최신 석탄채굴기술 설명회 준비를 위해 회의장 구석구석을 체크하며 돌아다녔다.

아로사는 스위스 남동부 그라우뷘덴 주에 위치한 인구 2250명의 작은 마을. 취리히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알프스 산골에 있다. 1928년과 1948년, 두 번의 겨울올림픽이 열린 생모리츠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다. 마을 인구 절반 이상이 관광 관련 일을 하고 호텔 침상 수가 4300개로 인구의 두 배나 되는 전형적인 관광도시다.

○ 호텔리어는 일자리의 보고(寶庫)


켈러 씨는 지난해 7월 3년 과정의 호텔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발트호텔의 콘퍼런스, 이벤트 진행 담당자로 입사했다. 이날도 1년차 경력의 직원답지 않게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행사 전반을 지휘했다. 2학년이던 2010년 이 호텔에서 1년간 인턴으로 일한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다. 행사장 마이크의 음향이 제대로 나오는지, 커피머신의 작동에 문제가 없는지를 일일이 챙겼다. 일손이 달리자 그는 생수통을 옮기는 허드렛일까지 거들었다.

이 호텔에선 15명 정도의 소규모 행사부터 수백 명 규모의 대형 행사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매주 1, 2건 열린다. 업무를 본 뒤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의 절반은 세계 각국에서 오는 비즈니스맨입니다. 비즈니스에 불편함이 없도록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고, 손님이 일을 끝낸 다음 스키 등 여가활동을 통해 만족을 얻어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호텔전문학교 시절, 차로 10분 거리의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하는 VIP를 상대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그를 이벤트, 콘퍼런스 업무로 이끌었다. 켈러 씨는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날이 있을 정도로 고되지만 이만큼 역동적이고 매력 있는 직업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호텔전문학교 3년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이 나오고, 추가로 1년 과정을 이수하면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지만 스위스의 호텔리어들은 학위에 목을 매지 않는다. 실업계 고교인 호텔직업학교 출신 중 약 10%가 호텔전문학교에 진학하고, 이들 중 특급호텔에서 일하고 싶거나, 매니저가 되고 싶은 약 30%의 학생만 4년제 학사 학위에 도전한다. 스위스에선 호텔직업학교만 졸업해도 어렵지 않게 별 3개 이하 중소 규모 호텔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관광국이지만 취리히, 제네바 등 대도시의 몇몇 특급호텔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중급 이하의 평범한 호텔이기 때문에 호텔리어는 청년이면 누구나 도전해 일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직업으로 꼽힌다.

호텔전문학교 졸업 후 첫해에 받는 월급은 평균 2000∼2500스위스프랑(약 250만∼312만 원)으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호텔리어는 스위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은 직종이다. 일자리가 많아 취업이 쉽고, 경험이 쌓이면 고액 연봉을 받으며 세계 각국에 진출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 “호텔리어는 만능 직업”


호텔리어는 다른 분야로 이직할 때도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경영, 정보기술(IT), 금융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한 경험에다 서비스의 기본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호텔리어 출신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라우뷘덴 주의 주도(州都)인 쿠어 시의 ABC호텔에서 만난 스테파니 쿤 씨(24·여)는 호텔리어 경력을 십분 살려 새로운 직장을 얻는 데 성공한 경우다. 호텔전문학교 졸업 후 이 호텔에서 1년간 일한 쿤 씨는 올여름 취리히에 있는 헤드헌팅 회사로 옮길 예정이다. 호텔 매니지먼트를 공부하다 회계, 인사 쪽 업무에 관심이 많아져 이직을 결심했다. 그는 헤드헌팅 회사에서 몇 년간 경험을 쌓은 뒤 다시 호텔 분야로 돌아와 세계적인 특급 호텔체인 입사에 도전할 계획이다.

대부분의 스위스 호텔리어들은 전문대 과정인 호텔전문학교와 고교 과정인 호텔직업학교를 통해 배출된다. 로잔호텔스쿨(EHL), 스위스 관광호텔 전문학교(SSTH) 등 10여 개의 명문 호텔학교를 비롯해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호텔전문학교들이 예비 호텔리어들을 양성한다. 데이비드 푸서 SSTH 교수는 “호텔리어의 능력은 체험을 통해 발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위보다 실제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스위스 호텔학교는 수업의 상당 부분을 실습에 쏟고, 졸업생들도 작은 호텔부터 취업해 경험을 쌓는다.

아로사·쿠어(스위스)=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스위스 관광일자리 규모 ▼


호텔리어는 관광대국 스위스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업 중 하나다. 스위스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스위스가 외국인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은 156억 스위스프랑(약 19조5000억 원)으로 화학, 금속기계, 시계 제작 수출에 이어 4번째로 큰 수입원이다.

관광산업 인력은 총 28만4100명으로 스위스 전체 서비스산업 종사자(243만 명)의 11.7%에 이르렀다.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에 그치지만 일자리 창출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은 7% 안팎으로 나타난다. 관광업이 ‘고용 창출형’ 산업임을 알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펴낸 관광경쟁력 보고서에서 스위스를 관광경쟁력 1위 국가로 꼽았다. 자연환경과 전문 인력자원 등 관광을 위한 각종 인프라와 비즈니스 환경이 관광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 종합 순위 32위에 그쳤다.

아로사·쿠어(스위스)=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 프런트-컨시어지 외국어 필수… 식음료 업무엔 자격증 있어야 ▼
■ 호텔리어 되려면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라미드호텔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이 조리실습 수업을 받고 있다. 라미드호텔전문학교 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라미드호텔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이 조리실습 수업을 받고 있다. 라미드호텔전문학교 제공
벤처기업에서 모바일게임 개발자로 일하던 김성진 씨(27)는 올해 3월 한 호텔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고 국내에 비즈니스호텔들이 속속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전직(轉職)을 결심했다. 김 씨는 “자신 있는 일본어를 활용해 호텔에서 고객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컨시어지 담당자나 각종 회의, 행사를 주관하는 컨벤션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979만 명.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2009년 이후 매년 10% 이상 늘고 있으며 올해는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들이 묵는 숙박시설은 태부족이다. 특히 대부분의 호텔이 1박에 20만∼30만 원을 받는 특급호텔이어서 10만 원 안팎의 숙박료로 묵을 수 있는 비즈니스호텔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비즈니스호텔 건립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사업승인을 받아 공사에 들어간 호텔만 41곳에 이른다. 대부분은 비즈니스호텔이며 이 중 24곳은 올해 공사가 마무리된다. 롯데호텔이 2009년 롯데시티호텔마포를 시작으로 제주, 서울 서초구 등에 10여 개의 비즈니스호텔을 세울 예정이다. 신라호텔도 서울 강남구 등에 5개의 비즈니스호텔을 착공하는 등 15∼20개의 비즈니스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비즈니스호텔과 관련한 일자리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보통 비즈니스호텔 1개가 문을 열면 평균 2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호텔들이 완공되는 2, 3년 안에 8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비즈니스호텔에는 프런트, 식음료, 객실관리, 컨시어지 등의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호텔리어가 필요하다. 프런트, 컨시어지 등은 외국어 능력을 갖춰야 하고, 식음료 관련 업무에는 자격증이 필요하다. 전문대마다 호텔, 외식 관련 학과들이 개설돼 있지만 최근에는 호텔들이 직접 세운 2년제 전문학교도 여러 곳 문을 열었다.

라마다호텔을 운영하는 라미드그룹은 라미드호텔전문학교를 세워 올해 첫 입학생을 받았다. 2010년 개교한 메이필드호텔전문학교는 메이필드호텔이 운영한다. 이준철 라미드그룹 인사팀장은 “비즈니스호텔 증가로 특급호텔과 일반 관광호텔로 양분된 국내 호텔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스위스 등 관광 선진국처럼 컨벤션 산업이 커지면 관련 분야의 호텔리어들이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일자리#복지#취업#고용#스위스#호텔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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