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재기자의 ‘어제 현장’] 정읍 물폭탄 현장…“밤이 아닌 낮이어서 불행 중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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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1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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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소와 집을 잃은 농민들, 용기는 남았다-태풍이나 장마 피해…10시간 만에 420mm 퍼부어-농촌지역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훨씬 커….

폭우가 쓸고 간 정읍 한우 판매 거리 모습.
폭우가 쓸고 간 정읍 한우 판매 거리 모습.
'쓰나미' 현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주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TV에서 접한 쓰나미보다 더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8월9일. 이 날은 전북지역 기상 역사에 새로운 기록이 작성된 날이다. 단 하루, 아니 단 10시간 만에 420mm라는 물 폭탄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지역 기상 관측 기록이 작성된 이래 최다 기록이었다. 이날 인근 지역 강수량은 100~200mm에 그쳤지만 유독 정읍지역에만 사상 최대 폭우가 집중됐다.

이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지역을 강타하는 '폭우'와 '폭설'은 연례행사가 됐다.

최근의 기상 이변은 날씨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태풍이 빗겨가고 장마가 끝났다고 방심한 틈을 비집고 사상유래가 없는 폭우로 답한 것이다. 그리고 그 폭우는 이제까진 별탈이 없던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있다.

'정읍 물 폭탄'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서울의 우면산 산사태와 인근 저수지 제방이 붕괴하며 그 물이 마을을 덮쳤기 때문이다.

정읍역 앞에서 중국집을 하는 김 모(60) 사장은 폭우가 오던 날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교회로 출발하던 새벽 5시에는 우산 없이 자전거 타고 갔거든, 그런데 아마 5시 30분부터 비가 쏟아졌던 것 같아. 예배가 끝난 6시가 되니까 마치 양동이로 쏟아 붓는 것 같이 앞이 안보이게 오더라고…그리고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비가 왔어. 내가 여기서 60년을 살았지만 살다 살다 이런 비는 처음이라니까. 정읍에 수해났다는 기사 있나 찾아봐."

그의 말대로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 초입에 자리한 정읍 지역은 예로부터 물난리를 겪지 않았다. 주위보다 고도가 높은 분지에 자리한 이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았지만 배수가 잘 돼는 지형이기에 수해만큼은 딴 세상 얘기였다.

●평화로운 산촌 마을을 덮친 수해

폭우가 쓸고 간 정읍 한우 판매상가 거리 모습.
폭우가 쓸고 간 정읍 한우 판매상가 거리 모습.
8월9일 오전 7시, 기상청은 호우주의보를 발령하고 9시40분에는 호우경보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미 장마도 끝났고 태풍도 지나간 마당에 '뭐 그리 큰 비가 오려나' 하고 대단치 않게 여겼다.

오후 2시45분. 거센 빗줄기는 시간당 50mm가까운 기세로 퍼부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사태가 정읍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산외면에서 발생했다.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는 한우농가와 한우판매상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1990년대 한두 집에서 한우고기를 싸게 팔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한우상가들은 이내 전국적인 한우명산지로 발돋움했고 현재는 정읍의 대표 상권이 됐다. '단풍미인한우'가 이 지역의 대표 브랜드다. 그러나 하루 밤 사이에 100여개의 상가가 밀집한 최대의 축산유통단지는 폐허로 변한 것이다.

산외면 북쪽에는 섬진강댐이 자리했고 아래쪽으로는 동진강과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정규 하천보다는 오히려 농사를 짓기 위한 설치된 중급규모의 저수지에서 터져 나왔다. 오후 세시가 되자 넘실거리는 하천에 더해 산 위쪽의 저수지 둑이 터지면서 그래도 300여가구 약 2000명이 거주하는 외산면은 말 그대로 '쓰나미'에 휩싸인 것이다.

"아무런 경고방송도 없었어요. 가게에서 부리나케 집에 도착한 세시에 벼락같이 물이 밀어 닥치더라고요. 옷이고 가재도구고 돈까지 다 놓고 그냥 몸만 도망쳐 나왔어요."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조행남씨와 김옥출 부부는 아직도 그 악몽에 몸서리쳤다.

"이 지역이 꽤 고도가 있는 지역인데,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어린이 키를 넘어 어른 가슴팍만큼 물이 차올랐어요. 발을 조금만 헛짚어 넘어진다면 곧장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니까요. 만약에 낮이 아니라 밤이었다면 우린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조용한 농촌마을이 거대한 물폭탄과 진흙더미에 잠겨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번 거대한 물난리로 7개의 다리가 유실됐고 200여 채의 가옥과 100여채의 상가가 침수되며 약 300억원에 가까운 피해가 났다. 그러나 사망자는 3명(산외면은 1명)에 불과했고 부상자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불행 중 다행'의 이유는 사건 발생 시각에 있었다

만일 저수지 제방 붕괴가 낮 3시가 아니라 새벽 3시였다면 어땠을까? 조명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골 면소재지는 그야말로 '재앙' 수준의 피해가 닥쳤을 것이다. 칡흙 같은 어둠 속에서 대부분 노인들이 대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은 8월10일 오후 3시는 외견상 마을 입구만큼은 깨끗하게 정비가 끝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수해의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가와 도로는 온통 진흙으로 뒤 덥혀 있었고, 도로변에는 상인들이 꺼내 놓은 냉장고와 일상용품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상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가게 안으로 진흙이 몰고 내려와 저장한 쇠고기는 물론이고 모든 전자제품들을 못쓰게 됐다"고 한탄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 몸 하나 챙길 여유도 없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아쉬움도 잠시, 이들은 군경 및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열심히 가려내 물로 닦아 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절망보다는 재기에 대한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물폭탄이 쏟아진 정읍의 한 농가에서 군인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물폭탄이 쏟아진 정읍의 한 농가에서 군인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도시보다 훨씬 심한 농가의 피해

보다 심각한 피해는 상가 이면에 자리한 농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새로 지어진 상가와 달리 허름한 농가는 밀려들어온 진흙으로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쑥대밭'이란 표현이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해 필요한 것이리라. 물이 휩쓸려오면서 낡은 담장들은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진흙과 나뭇가지 등이 순식간에 집 안으로 몰려온 탓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시대에 지어진 이 지역 농가들은 여전히 가난한 우리 농가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소 네 마리를 키웠던 조병수(72)씨는 집 마당에 자리하고 있던 축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애지중지하던 소 2마리를 잃었다. 마을에서 키우던 소들은 익사하거나 축사에 깔려 죽었다.

보상 문제로 인해 죽은 소를 함부로 치우지도 못하고 허둥댔다고 하소연한다. 뿐만 아니라 몸을 뉘일 곳도 깨끗한 옷도 부족해 당분간 잠은 마을회관과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복구가 먼저다. 조금 다행스러운 환경이라면 예전과 달리 디지털카메라 정도는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폭우가 한퀴고 간 한 농가의 모습.
폭우가 한퀴고 간 한 농가의 모습.
●"비가 또 온다… 어휴 지긋지긋한 비다"

산외면 한우마을 복구 작업을 위해서 주민과 공무원들 뿐 만 아니라 인근 부대원들과 소방대원들이 총동원됐다. 가구당 5명씩 배치된 군인들은 쏟아져 나온 가재도구를 급히 정리하고 진흙을 치우는 일을 도맡았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군인들이 투입된 이들은, 젊은 세대가 부족한 농촌지역 수해현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이 밖에도 소방대원들은 소방차를 동원해 거리를 치우고 있었고, 한국전력 직원들은 전기 복구 작업을, 적십자사는 빨래작업을 도왔고 삼성 LG 등의 가전회사는 재빨리 전자제품 수리에 나섰다. 그러나 한 눈에도 복구인력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근 칠보면에 사는 택시기사 전상용(40)씨는 "이 곳 뿐 만 아니라 정읍 전체가 산사태에 물난리를 겪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서울에 물난리가 나면 금방 복구 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한다. 피해 면적이 넓어 인력과 장비의 명확하기 때문이다.

●"피해 보상요? 현실과는 큰 괴리…"

복구 작업을 마친 장병들이 몸에 붙은 흙을 대충 씻어내고 있다.
복구 작업을 마친 장병들이 몸에 붙은 흙을 대충 씻어내고 있다.
"피해 액수요? 말로 다 할 수가 없죠…물에 잠긴 저 TV 하나만 100만원이 넘잖아요. 담벼락 무너지고 여름 내내 말린 담배와 고추는 또 어떻게 할 건데요. 추석이 한 달 앞인데 큰일이네요."

농촌지역의 수해 피해는 도시지역보다 몇 배에 달하곤 한다. 문제는 피해 액수를 산정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는 것. 게다가 농촌지역의 수해는 도시와 달리 '연례행사'로 치부되는 경향마저 있다.

한 마디로 농민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환경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수해가 발생할 경우 입는 타격은 도시민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다. 수해를 완벽하게 복구되기 전까지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다.

담배농사를 하는 박옥래씨만 해도 올 여름 햇볕이 귀한 상황 속에서 틈틈이 배와 고추를 바지런히 옮겨 말리며 상품가치를 높였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피해에 대한 아무런 증빙자료도 없으니 보상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정부나 공무원들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피해정도만을 엄격한 심사 하에, 그것도 그 일부만을 보상한다. 때문에 주민들도 정부의 피해보상에는 큰 기대를 내비치지 않았다.

이 지역 출신 유성엽 의원(무소속) 이날 수해지역을 돌며 주민들과 함께 청소하며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다"며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피해에 그 역시도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저녁 6시가 되자 비가 그치고 해가 얼굴을 내민다. 지나가는 비라서 다행이다. 복구 작업에 투입됐던 군인들은 일단 부대로 복귀하고 내일 다시 수해현장으로 대민지원을 나온다.

천마부대 소속의 젊은 장교는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고 기꺼이 고생을 감수한다고 말한다. 그의 몸은 온 통 진흙투성이였다. 농민들은 그런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정읍=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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