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규제에 갇힌 신도시]<3>‘인구밀도 2위’ 공장도시 부천

  • 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증개축 금지 등 각종 규제로 공장 시설이 점점 노후화하고 있는 경기 부천시 도당동 일대. 겨울철이 되면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천=이훈구 기자
증개축 금지 등 각종 규제로 공장 시설이 점점 노후화하고 있는 경기 부천시 도당동 일대. 겨울철이 되면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천=이훈구 기자
“과밀억제로 공장증설도 못해”… 9000여 中企 깊은 시름

2004년부터 조성 오정산업단지

수도권 이유로 개발부담금 부과

지하로 매설하려던 통신-전력선

토공, 원가낮추려 전봇대로 연결

고도제한에 뉴타운 건설도 발목

면적이 53.5km²에 불과하지만 인구가 86만5000여 명에 이르는 거대도시인 경기 부천시의 시정 목표는 ‘기업 하기 좋은 경제도시’다.

규모가 작은 영세업체를 포함해 현재 9000여 중소기업이 생산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지난해 1월 전국 처음으로 ‘기업사랑 조례’를 만들어 기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과도한 수도권 규제정책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 공장용지 활용 못해 중국에 공장 세워

과밀억제권역 내 산업단지와 공업지역에서 대기업의 공장 신증설을 금지하는 내용의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등 각종 규제에 따라 기업 활동이 위축돼 지역경제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연간 매출이 6000억 원에 이르는 원미구 도당동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는 공장용지에 2억 달러를 들여 생산시설을 늘리려고 했으나 여러 규제 때문에 중도 포기하고 중국에 공장을 세워야 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그린벨트에 공장을 세운 중소기업을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다.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소사구 계수동 B사의 터는 지대가 낮아 매년 여름철 많은 비가 내리면 공장이 물에 잠겨 생산 활동이 중단된다.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회사는 터를 높여 공장을 증설하려 했지만 자연녹지지역이라는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아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애를 태우고 있다.

친환경농업자재를 생산하는 소사구 옥길동 K사 공장은 1980년대에 지은 낡은 건물이다. 이 회사 역시 제품 생산량이 늘어 공장을 증·개축해 재정비하려고 했지만 그린벨트 내 건축물 건축과 공작물 설치 등을 금지하는 특별조치법 때문에 증설 계획을 접어야 했다.

○ 규제 때문에 들어서는 전봇대 화재사고 위험

지방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도 수도권 규제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시가 2004년부터 오정구 오정동 29만여 m²에 이르는 땅에 조성한 오정지방산업단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는 지역특화산업단지로 육성하기 위해 주변 시세보다 싼 가격에 분양하려고 했으나 지난해 정부가 62억 원에 이르는 개발부담금을 부과했다. 지방산업단지이지만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농지보전부담금 감면대상에서 제외한 것.

이에 따라 단지 내 땅은 3.3m²당 인근 아파트형 공장보다 117만 원 정도 높은 467만여 원에 분양돼 결국 입주기업들이 부담을 떠안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로 조성되는 단지이지만 전선이나 통신선로를 땅 속에 매설하지 않고 땅 위에 전봇대를 세우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단지를 분양받은 45개 금형업체는 14일 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단지를 개발하는 한국토지공사가 조성원가를 낮추기 위해 지상에 전봇대를 설치해 전력공급과 통신선로를 연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산업단지의 건폐율이 80%이기 때문에 공장 건물들이 가까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전봇대까지 지상에 설치하면 전기와 화재사고 위험이 있어 기업생산 활동에 차질을 빚게 된다며 지중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업체들은 전력공급선과 통신선로를 지중화하지 않을 경우 공장 건축은 물론 입주를 거부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 대학 땅 두고도 시설 확충 못해

정부의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에 따라 조성된 중동, 상동신도시에 비해 낙후된 옛 도심을 개발하기 위해 시가 지난해 발표한 뉴타운 건설사업도 정부의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까지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2만6000여 가구가 들어서는 뉴타운으로 조성하기 위해 경기도가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한 고강지구(면적 174만 m²)는 김포공항에서 가까워 모든 지역이 항공기 운항에 따른 고도제한지구로 묶여 있어 아파트 높이가 7∼13층으로 제한된다.

또 고강지구 내 항공기 소음피해지역(2종·3만4000m²)은 아예 주거시설 건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시는 정부가 그린벨트를 일부 풀어주거나 도로와 같은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해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대학도 수도권 규제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서울이나 인천과 가까워 재학생이 7000여 명에 이르는 원미구 심곡2동 부천대는 1979년 매입한 토지 4만3000m²를 30년 가까이 방치해두고 있다. 학생들을 위해 체육시설과 강의동을 짓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역시 과밀억제권역이라는 이유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불합리한 규제로 발생한 피해를 정리한 ‘경제투자 활성화를 저해하는 규제사례 모음집’을 최근 발간해 정부에 전달했다”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지하철 7호선 부천구간 정부지원 절실”▼

광역철도 아닌 도시철도 지정… “자금난에 공사중단 위기”

수도권 규제와 함께 지난 정부의 독단적인 정책 결정 때문에 부천시는 수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천은 전체 면적의 34.2%인 18.28km²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포함돼 있어 인구밀도(km²당 1만6150명)가 전국 도시 가운데 서울(km²당 1만711명)에 이어 2위인 과밀도시.

특히 택지개발사업에 따라 조성된 중동, 상동신도시의 입주가 1995년부터 시작되면서 인구가 23만여 명 늘었다.

시는 인구 밀집에 따른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2003년 서울지하철 7호선 부천구간(7.39km) 연장사업에 착공하기로 했다.

서울 구로구 온수역이 종점인 7호선을 부천을 거쳐 인천지하철 1호선 부평구청역까지 잇는 공사로 시는 2010년까지 완공하면 교통 흐름이 분산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정부는 서울∼부천∼인천 등 광역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이 노선을 광역철도가 아닌 도시철도로 지정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비 부담률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

광역철도는 정부가 사업비의 75%를 지원하며 경기도가 17.5%, 나머지 7.5%(677억 원)만 시가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도시철도는 총사업비(9023억 원)의 40%(3609억 원)를 시에서 내야 한다.

당시 시는 7호선 연장구간이 서울과 경기, 인천 주민에게 필요한 사업인 만큼 광역철도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반대했다.

결국 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듬해 공사에 들어가 올해까지 국비 1726억 원, 시비 1183억 원이 투입됐지만 공정은 고작 36%에 이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연간 일반회계 예산이 6000억여 원에 불과한 시가 공사를 완공하는 데 필요한 2426억 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며 “정부가 사업비를 늘리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부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공장 재배치만 허용돼도 기업들 해외로 안나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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