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극과 극 아우르는 ‘잡종의 엘리트’

입력 2005-12-31 03:00수정 2009-10-08 15:4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역사는 권력을 만들어내고, 격동의 역사 뒤에는 격렬한 권력 이동이 뒤따른다는 보편적 언명이 21세기인 오늘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인터넷 디지털시대가 촉발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대변혁은 새로운 권력 담론과 권력 이동을 동반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파워엘리트의 출현을 예고한다.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를 골간으로 전개된 거대한 사회 변동 속에서 파워엘리트 역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21세기 문명사를 주도할 파워엘리트는 정치권력과 경제력만을 앞세웠던 20세기형 파워엘리트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기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권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 기업은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전위·前衛)로 여겨지면서 사회적 의제까지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조직 내의 파워엘리트 분포도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금융자본과 기술경쟁이 생존의 절대 변수가 되면서 금융엘리트(CFO)와 기술엘리트(CTO)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은 21세기 파워엘리트의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글로벌의 외연과 내포가 무한히 확대되고 심화되는 시대 환경 속에서 오늘날 글로벌스탠더드에 익숙하지 않은 파워엘리트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글로벌스탠더드를 장악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장악하며 우월한 표준이 곧 권력인 셈이다. 컨설턴트와 국제변호사가 떠오르는 파워엘리트 1순위로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1세기는 정보가 권력이며 속도가 권력의 원천으로 꼽히면서 정보 콘텐츠 지배자가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등장한다. 디지털 시대의 파워엘리트로 디지털과 지식계급의 합성어인 ‘디제라티(디지털 지식계급)’의 부상을 지목하고, 이들이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등장할 것이라는 미국 저널리스트 존 브록먼의 예견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하드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의 이행 역시 이 시대 권력 이동의 한 축으로 여겨진다.

문화력과 통합력을 축으로 하는 새 파워 패러다임이 정치·경제력과 군사력에 기반을 두었던 기존 파워 패러다임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 영역의 소프트 엘리트가 과거 정치 엘리트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진단은 탈(脫)정치화된 문화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는 시대 환경과 다르지 않다.

21세기의 파워엘리트는 융합(퓨전)을 덕목으로 삼는다. 융합이 새로운 파워엘리트의 조건이 되는 것은 순수 혈통이 대우받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로를 경멸했던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이 융합한 보보스(BOBOS)가 혁신의 주도자,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전위대, 상징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엘리트로 여겨지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 연유한다. 한국 국적, 외국 교육 경험, 초국적 기업 근무 경력의 혼합형 인간이 조직의 리더로서 파워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새로운 파워엘리트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역량 강화를 중시한다.

소수 경영자가 다수 근로자를 관리하던 대규모 피라미드형 조직의 관리형 엘리트 시대는 가고, 정보와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연결하는 허브형 네트워크 엘리트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폐쇄에서 개방으로, 집중에서 분산으로, 개체에서 관계로 이행하는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읽어 내는 감각을 갖고 있다.

파워엘리트의 성별, 연령별 분포 역시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탈(脫)남성의 시대 흐름은 기존의 남성 일방적인 권력 구조와 파워엘리트의 충원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21세기가 여성 중심의, 문화로 다듬어진 산업을 근간으로, 유연한 방식에 의해 구성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의 권한 강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자원과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역(逆)세대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파워엘리트의 연령 구성이 다원화되고 젊은 세대로의 중심 이동도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부(富)와 재능, 대중적 인기만으로 명성을 얻었던 이른바 ‘스타(star)’의 시대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는 부와 재능, 대중적 인기 못지않게 신뢰와 윤리, 검약과 봉사가 동반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셀레브리티(celebrity)’를 칭송하고 갈구하고 있다. 과거의 엘리트가 담과 성을 쌓으면서 자신들만의 권역을 유지했다면, 미래의 엘리트는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연결의 길을 만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공론의 장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면서 말이다.

파워 엘리트의 형성과 권력 이동에 관한 담론과 트렌드가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한국 사회의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엘리트의 조건들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 세계의 뉴 파워그룹

세계는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기존 권력의 해체나 분산, 새로운 파워엘리트의 등장은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이 처한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권력 이동의 양상과 방향은 다르다.

미국과 일부 유럽국가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정치적으로 신보수주의의 득세, 경제적으로 정보기술(IT) 및 금융업 중심의 재편, 사회적으로는 보보스(BOBOS)로 대변되는 새로운 엘리트 라이프스타일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신보수주의 득세는 사회주의 몰락과 탈냉전으로 이념의 종말이 왔다는 예상을 뒤엎은 놀라운 변화였다.

IT와 금융업은 제조업 1인자 자리를 일본에 빼앗겼던 미국이 새로 도약하는 견인차가 됐다. 디지털경제와 지식자본주의의 선두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대표적이다.

서구 새 파워엘리트의 사회문화적 특징은 세련된 보헤미안 스타일과 최고 자리를 향한 성취욕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 보보스로 요약된다. 이들은 청교도적 금욕주의가 아닌 새로운 취향과 스타일의 소비주의를 추구한다.

세계적 차원에서 권력 이동을 논할 때 중국을 뺄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는 실용주의적 개혁 개방파의 득세, 경제적으로는 다양한 시장 실험을 통해 등장한 기업 엘리트의 파워가 강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해외 유학파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바람이 거세다.

중국 개혁 개방파의 득세는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서구 신보수주의와 대비된다.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거 ‘인민의 적’으로 규정했던 자본가를 ‘권력의 파트너’로 인정한 데서 보듯 기업 엘리트의 파워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 준 연세대 교수·사회학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