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라이프]주민 음악밴드 '마포스'

  • 입력 2004년 2월 1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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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 끝자락의 K음악연습실. 일요일 늦은 저녁 한 스튜디오에 예닐곱의 사람이 악기를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다. 악기를 만지는 이들은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봤음직한 30, 40대 아저씨와 아줌마들. 그러나 마포 일대에서만큼은 조용필, 서태지도 울고 간다는 최고의 인기그룹, 이름도 찬란한 ‘마포스’가 바로 그들이다.》

자신 있는 레퍼토리라는 ‘연’을 들어봤더니 마포를 주름잡는다는 뮤지션치곤 틀리는 부분이 많다. 솔직히 보컬도 신통치 않은 편. 드럼을 치는 신상열씨(45)는 “그래도 2주 연습하고 첫무대에 올랐던 지난해 봄보단 훨씬 나아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마포스는 마포구 성산동, 서교동 일대의 주민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 멤버 중 몇몇은 약간 악기를 연주해본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처음에는 악보도 볼 줄 몰랐다. 대학 강사, 태껸 사범, 고등학교 교사, 주부 등이 이들의 직업이다.

이들이 음악밴드를 결성한 것은 우연찮은 기회에 시작됐다. 지난해 봄, 인근 성미산에 배수지를 건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성미산 지키기 운동’이 진행될 때 주민들은 역량을 모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세컨드 기타를 맡고 있는 양동호씨(40)는 “분위기도 띄우고 우리도 즐겁게 놀아보자고 모인 것이 마포스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임은 밴드 결성 이전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어린 자녀들을 둔 이들은 “우리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 보자”는 취지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우리어린이집’ 등 세간에서도 큰 화제가 됐던 공동육아모임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

이후 이 모임은 먹을거리와 환경도 주민 손으로 직접 가꾸는 도시 속 마을 공동체인 ‘마포두레’로 발전했다.

여성보컬인 유지연씨(36)와 박미현씨(41)는 “헌신적인 이웃들과 열심히 살아왔다”면서 “이젠 우리도 뭔가 우리 자신을 위한 즐거움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들 바빠 일요일 저녁 한번밖에 모이질 못하지만 음악활동이 ‘삶의 악센트’가 되어 준다는 것. 무심하던 가족들도 지금은 마포스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상열씨는 “사실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에 경기도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드러머가 밴드에 빠질 수 없어 이사도 못가고 있다”고 실토했다.

요즘 마포스는 다음달 31일 있을 밴드결성 1주년 콘서트 준비로 무척 바쁘다.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14세 중학생도 영입했다. 멤버들은 “아직 무대엔 세 번밖에 못 올랐지만 불러만 준다면 어떤 모임에도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포 어디를 가도 폭발적인 주민 팬들이 있기에 ‘마포스’ 멤버들은 오늘도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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