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조미옥/풀빵과 붕어빵의 화해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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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옥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동네 어귀마다 붕어빵, 풀빵 장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비좁은 리어카 천막 안에서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가을이 주는 또 하나의 정겨움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동네 정류장 근처에도 예의 그 리어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 막을 천막 하나 변변찮은 낡은 리어카다. 왜소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얼굴, 귀를 덮는 야전용 모자를 쓴 모습의 풀빵 장수는 10년 가까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장인들이 출근할 무렵 나타나서 해가 져야 돌아가는 것도 변함없다.

‘15개 1000원’이라고 쓰인 나무판자가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하루 내내 말 한마디 안 하던 그 아저씨 주변에 요즘 작은 변화가 생겼다. 정류장 푯말 반대쪽에 며칠 전부터 붕어빵 장수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붕어빵 집 주인은 두 사람이다. 고부지간처럼 보이는 두 아주머니. 살집도 많고 웃음도 많다.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도란도란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조그만 리어카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아기자기한 천막에 예쁜 글씨도 쓰여 있고, 모양 좋은 붕어빵들이 사이좋게 등을 포개고 있다. 풀빵 장수 아저씨는 가끔 곁눈질로 이 불청객들을 보는데, 별다른 말은 없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달갑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한 엿새 전 퇴근길, 신호를 기다리며 풀빵 리어카 앞에 서 있자니 갑자기 저만치서 붕어빵 며느리가 다가와 종이컵 커피를 풀빵 장수에게 건네며 배시시 웃는다.

“쌀쌀한데 이거 드시고 하세요.” 머쓱하니 이를 받아드는 풀빵 장수 아저씨 얼굴에 처음 보는 웃음이 번진다. 가끔 풀빵을 사갈 때도 보지 못했던 웃음이었다. 그 후로도 붕어빵 며느리의 커피 인심은 한두 번 더 목격됐다.

커피가 두 리어카를 이어준 사랑의 묘약이 된 셈이다.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관계’들에게 붕어빵 며느리처럼 따뜻한 커피 한 잔이라도 건네야겠다.

㈜케이씨엔컨설팅 홍보대행 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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