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오금동 케니 지’ 연주에 우체국, 콘서트홀이 되다

  • 입력 2009년 6월 3일 02시 57분


1일 오후 서울 송파우체국에서 한병수 우체국장(오른쪽)이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송파우체국은 한 씨가 부임한 뒤 미니 콘서트와 미용봉사, 의료봉사가 매주 이어지며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다. 김재명 기자
1일 오후 서울 송파우체국에서 한병수 우체국장(오른쪽)이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송파우체국은 한 씨가 부임한 뒤 미니 콘서트와 미용봉사, 의료봉사가 매주 이어지며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다. 김재명 기자
송파우체국장 고객에 색소폰 연주
부인은 미용기술 배워 자원봉사
하모니카 같이 부는 단골도 생겨

1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오금동 송파우체국. 중년의 신사가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가 우체국 1층을 가득 채웠고 창구 앞에서 분주하던 고객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이 신사는 익숙한 동작으로 색소폰을 다루며 박자에 맞춰 어깨를 조금씩 흔들었다. 미간까지 약간 찡그려주니 영락없는 ‘케니 지’의 모습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 색소폰 연주하는 우체국장

바쁜 우체국에 색소폰 선율을 채운 주인공은 송파우체국장 한병수 씨(54)다. 한 씨는 매달 첫째 주 월요일 우체국에서 ‘고객사랑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창구 직원 변정선 씨(35·여)는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고객들도 이제는 색소폰 연주에 익숙해진 것 같다”며 “번호표를 들고 연주에 빠져들어 자기 차례를 잊어버리는 고객도 종종 있다”고 웃었다. 직원들은 “국장님의 연주를 들으러 일부러 우체국을 찾는 ‘관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 씨가 처음 색소폰 연주를 시작한 것은 전북 군산우체국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당시 개인 취미생활로 색소폰을 배우고 있던 한 씨는 자원봉사차 찾은 요양원에서 첫 공연을 펼쳤다. 의외로 노인들의 반응이 좋자 한 씨는 우체국 고객들에게도 색소폰 연주를 들려줬다. 한 씨의 색소폰 연주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고 이때부터 직원들은 한 씨를 ‘색소폰을 연주하는 우체국장’으로 불렀다.

한 씨의 선곡은 대중가요부터 팝송까지 다양하다. 한 씨는 “남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체국 공연을 하고 있다”면서 “연령대가 다양한 고객의 취향을 맞추려다 보니 대중가요부터 팝송까지 다 연습해야 한다”며 웃었다. 취미로 시작한 색소폰 연주이지만 노인요양원과 우체국에서 수백 차례의 공연을 펼치다 보니 이제는 프로 연주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됐다.

○ 우체국이 콘서트홀, 미용실, 병원으로

이날 작은 콘서트홀로 바뀐 송파우체국은 한 달에 한 번 미용실로도 탈바꿈한다. 매월 둘째 주 월요일에는 한 씨의 부인 이덕순 씨(51)가 미용 기술을 배워 직접 가위를 들고 송파우체국에 등장한다. 한 달에 한 번 인근 병원에서 실시하는 의료봉사까지 포함하면 우체국이 콘서트홀, 미용실, 병원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갖가지 봉사활동이 지속되면서 콘서트 출연자가 점점 늘어나기도 한다. 이날 2부 공연에서 하모니카로 조용필의 ‘허공’을 멋지게 연주한 이무자 씨(69·여)는 우체국 손님으로 왔다가 직접 공연에까지 나서게 됐다. 이 씨는 “우체국에서 연주를 들으며 파마를 하다가 나도 한 번 연주를 해 보고 싶어서 하모니카를 잡았다”며 웃었다. 공연을 지켜보던 김순옥 씨(68·여)는 “우체국 업무 외에도 소외된 이웃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우체국을 찾는 주민이 많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한 씨의 이마에는 어느덧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한 씨는 환한 표정으로 땀을 닦아내며 “처음에는 우체국장인 줄 모르고 밤무대에 출연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고객도 있었다”며 “우체국을 찾은 고객과 요양원의 어르신들이 내 음악을 듣고 미소를 띠며 박수를 보낼 때가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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