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4시]전동차 광고, 서민 눈길끄는 경연장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57분


강남역에서 역삼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2호선 안. 고개를 들어 왼쪽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동차의 허리 위를 훑는다. 완전히 ‘광고의 동굴’이다. 마치 박쥐들이 빼곡히 들어찬 것 같다.

이렇게 온갖 광고가 지하철에 얼굴을 내밀고 ‘성황’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 ‘싼 맛’ 때문. TV 신문 라디오 잡지에 이어 ‘제5의 매체’라지만 전동차 광고의 경우 가장 비싼 천장걸이형의 한달 사용료가 3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교차로’ ‘벼룩시장’ 등 무가지에서 가장 작은 크기(3㎝×5㎝)의 구인광고가 단발에 3만원인 것과 단번에 비교가 된다.

출입문 좌우에 얌전히 알루미늄 액자 속에 붙은 광고도 월 2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 전동차 천장과 벽면 사이에 매달린 ‘모서리형’ 광고는 당연히 그 이하다.

가격은 콘텐츠를 결정하는 법. 눈 씻고 봐도 고가품은 없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게 인터넷관련 광고이고 그 다음이 화장품과 의류, 그리고 목돈이 궁한 서민용 금융상품 광고의 순이다.

“지하철은 기본적으로 ‘서민철’ 아니냐”는 도시철도공사 관계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강사진과 강의내용을 깨알 같이 적어 넣는 대입학원 광고는 지하철 외에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노선별로 광고 아이템에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경기에 민감하게 영향 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부동의 1위였던 인터넷기업(31%) 물량도 벤처의 폭락으로 요즘 10% 이상 줄었다.

그러다 보니 역시 ‘질보다 양’이라고 지하철 당국의 광고 유치전도 상당하다. 광고 물량이 가장 많은 노선은 단연 2호선.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 대학가를 거치고 롯데백화점(을지로입구역, 잠실역), 현대백화점(신촌역), 강남역 일대(강남역)를 경유해 어느 노선보다도 ‘구매력’에 강점이 있기 때문.

지난해 2호선의 광고액은 173억여원으로 1, 3, 4호선의 광고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2, 4호선 광고대행업체인 ㈜국전 관계자는 “요즘처럼 경기가 최악인 경우 광고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다른 노선에는 광고가 100% 채워질 때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결국 지하철 광고는 승객들의 ‘지갑 사정’, 때로는 사회적 지위까지 비추는 거울 노릇도 하는 셈. 일본의 경우, 도쿄 신주쿠역에서 서북쪽으로 50여㎞에 이르는 게이오선 전동차 내부에는 내릴 문의 방향을 알려주는 전광판에 동영상 광고가 흐르고 별도의 모니터을 통해 홈쇼핑도 한다지만 우리로선 요원한 얘기다. 5대 광고매체 가운데 경찰과 국정원의 ‘간첩신고 광고’가 유일하게 남은 곳도 지하철이다. 물론 싼 맛 때문이겠지만 이제 길거리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 광고는 ‘서민의 발’ 인 지하철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잘 보면 보입니다’라는 광고문구처럼 잘 찾아야 보이긴 하지만.

 1호선2호선3호선4호선
광고물량

(단위:백만원)

3,29017,3015,8414,88031,312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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