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교통선진국]어린이 보호장구 소홀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44분


2000년 4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오산 부근에서 승용차 추돌 사고가 있었다.

부모는 안전띠를 매고 있었으므로 가벼운 상처를 입는 데 그쳤다. 그러나 조수석에서 엄마가 안고 있던 네살짜리 아이는 사고충격으로 자동차 밖으로 튕겨 나가면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부모는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사고는 어린이 보호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얼마나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부모들은 ‘설마’하는 안이함과 ‘아이가 답답해한다’ 등의 이유로 보호 조치를 소홀히 한 채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도 도로교통법에서 승용차의 어린이보호장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을 뿐 위반자에 대한 단속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어린이 보호 장치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는 모습이다.

▽충격적인 충돌 실험결과〓올 4월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승용차에 6세 어린이의 인체모형을 뒷좌석에 태우고 시속 48㎞로 고정벽에 정면충돌하는 시험을 했다. 그 결과 안전띠를 매지 않은 인형은 뒷좌석에서 완전히 튕겨 나와 차량내부와 2, 3차례 충돌하면서 머리와 목에 사망에 가까운 중상을 입었다. 상해비율은 313% 어린이 보조 좌석을 설치하고 안전띠를 맨 인형보다 부상 정도가 3배나 됐다.

어른용 안전띠를 맨 인형도 어린이 보조 좌석을 이용했을 때보다 15∼30% 더 심하게 부상했다. 또 어른용 안전띠는 어린이의 머리와 목에 위치하기 때문에 목과 배 부위의 충격이 매우 심해 치명적인 상해 또는 장 파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교통안전연구소 박천수 연구원은 “미국 연방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안전띠와 보조 좌석을 올바로 사용하면 사망률을 7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부끄러운 어린이 사망률 최고〓80년대 이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는 꼴찌 수준이다.

99년 OECD 조사자료를 보면 어린이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스웨덴 1.4명, 일본 1.7명, 영국 2.1명, 독일 2.4명 등이지만 한국은 6.1명으로 이들 국가보다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교통개발연구원이 전국의 부모 1175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세 이상 어린이의 65%는 운전석 뒤쪽에 앉지만 1∼4세는 조수석이 22%로 다른 연령대가 조수석에 앉는 평균치(6.8%)보다 훨씬 높았다. 그것도 대부분은 위험천만하게도 엄마가 아이를 안고 탄다는 것.어린이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보조 좌석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장·탈착이 어렵다(35.9%) △안전상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19.8%) △비싸다(19.2%) 등을 꼽았다. 보조좌석과 관련해 경찰의 단속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4.1%에 불과해 경찰단속이 시늉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줬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보조 좌석은 국산은 10만∼20만원, 외국산은 30만∼40만원 수준. 문제는 가격보다 부모들이 사고위험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충북대 심리학과 이순철 교수는 “엄마가 아이를 안고 타면 아이만 죽고 엄마는 산다는 점을 차량 부모들에게 일깨워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어린이를 생후 1년 미만의 유아와 1∼4세, 4∼10세 등 3분류로 나눠 각각에 맞는 보호장구를 내놓고 있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미국도 모든 주에서 어린이보호장구 설치가 의무화돼 있으며 12세 이하 어린이는 에어백에 의한 부상을 막기 위해 아예 앞좌석에 앉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안전띠착용운동본부 허억 사무국장은 “외국에서는 부모만 안전띠를 매고 아이는 안전장구를 갖추지 않았다가 사고가 나면 부모의 양육권을 일정기간 박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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